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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의 잠자는 미녀
아드리앵 고에츠 지음, 조수연 옮김 / 열음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쉽게 생각했다. 많지 않은 분량에 역사와 미술과 미스터리가 엮여있다 길래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집중해서 읽으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문장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쉽지 않다. 한 점의 사라진 그림을 둘러싼 세 사람의 이야기가 그 시대의 미술과 인물들과 엮이면서 다른 분위기와 미스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미스터리는 기존에 알고 있던 살인이나 음모 같은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전혀 미스터리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이 세 이야기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잔잔하게 이어진다.
처음에 표지에 나오는 그림이 제목의 그림인줄 착각했다. 첫 단추부터 문제가 조금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꾼인 앵그르가 이 그림을 어떻게 그렸는지 보여준다. 그가 그 그림의 모델에게 어떻게 매혹되고 빠져 들었는지와 그의 예술관이 드러난다. 짧고 분명한 문장으로 이어지는데 수많은 이름과 작품은 사실 몰입을 방해한다. 주석이 달려 금방 찾아볼 수 있지만 이런 작업들이 번거롭다. 알고 있는 이름도 있고, 기억이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그가 그 그림과 그 모델을 사랑했음을 보여주고, 상실의 아픔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두 번째 화자는 인상파의 선구자로 꼽히는 카미유 코로다. 역시 작가는 이 화가의 삶을 보여주면서 예술관을 말한다. 하지만 그 삶 속에 가장 강한 인상을 준 작품으로 앵그르의 <나폴리의 잠자는 미녀>를 꼽는다. 풍경화가지만 그가 그 그림에서 받은 충격은 전 생애에 걸쳐 그와 함께 살아갈 정도다. 아니 나이가 들수록 괴롭힌다. 그리고 앵그르가 잃어버린 그림의 다음 행적을 그의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하지만 끝내 그 진실을 밝혀내지는 않는다.
마지막은 가장 짧은 분량이자 화가가 화자가 아니다. 앵그르의 잃어버린 그림의 소유자인 제리코의 친구인 사진작가다. 그 그림은 이제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다른 화가에게 영감과 충격을 준 것에 비해 그에겐 별로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 모양이다. 그것보다 재미난 점은 앵그르의 짝사랑이었던 그녀의 숨겨진 사실이다. 이 사실과 카미유가 노년에 만난 여인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것은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할 것 같다.
전체적으로 한 편의 소설보다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힌다. 각 화자가 예술론과 그 시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상당히 겹친다. 1861년과 1866년과 1861년의 회상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다. 미술사로 읽는다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예술의 변혁기에 일어난 변화가 상당히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미스터리로 읽는다면 조금 실망할 수 있다. 그 실체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뚜렷하지 않는 실체 속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있다. 바로 실제 나폴리의 잠자는 미녀다. 왜 있잖은가? 볼 수 없거나 읽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강한 갈망과 호기심이 환상을 키우는 경우 말이다. 지금 이 소설이 나에게 쉽지 않지만 나중에 다시 읽을 때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