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으로 향하다 - 리암 니슨 주연 영화 [툼스톤]의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9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매튜 스커더 시리즈 중 번역되어 나온 것은 모두 읽었다. 그때마다 느끼지만 참 재미있다. 예전에 읽은 작품들의 세부 내용들은 이제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지만 재미있다는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러니 이 탐정이 나오는 추리소설을 그냥 넘어가는 것은 무리다. 인간적이고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그의 활약을 보다 보면 거대하고 비정하면서 잔혹한 대도시 뉴욕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부터 이야기는 잔혹하다. 마약 중개상의 아내 프랜신 코리는 장을 보러 나간다. 장을 보고 나오는 순간 두 명의 남자가 그녀를 납치한다. 비명을 지르고 도움을 요청할 시간을 그녀가 놓친 것이다. 잠시 후 납치범은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몸값으로 100만을 요구한다. 남편은 당장 구할 수 있는 40만불을 제시한다. 인질범은 거래를 승낙하고, 캐넌은 집에 있던 금고에서 돈을 꺼내어 그들의 요구대로 움직인다. 보통 가정이라면 경찰을 불렀겠지만 그의 직업상 그들을 부를 수 없다. 돈을 제대로 전달되었다. 하지만 프랜신은 바로 오지 않았다. 다시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장소를 말하고, 그는 형과 함께 그 곳으로 간다. 그리고 토막으로 잘린 그녀를 차 트렁크에서 발견한다. 

  

 

 캐넌의 형 피터는 알콜중독자 모임에서 스커더를 알게 되었다. 동생에게 이것을 말하고, 스커더에게 연락을 한다. 그는 백정들의 미사에 함께 한 친구가 있는 아일랜드로 가려고 마음먹고 비행기 표까지 끊은 상태다. 하지만 캐넌에서 이 잔혹한 사건을 듣고 여행을 포기한다. 그리고 탐문수사를 하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에서 모인 정보와 자신의 경험이 합쳐져서 단순한 납치살인이 아니라 연쇄살인사건임을 알게 된다. 그 범인들은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여자를 납치하고 강간하고 살해하고 있다.   

 

 매튜의 탐문수사는 약간 지지부진한 상태다. 연쇄살인범이란 사실을 밝혀내지만 그 정보만 가지고 범인을 찾기는 사실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티제이와 콩 브라더스의 도움은 범인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계기가 된다. 아직 현재처럼 발신자 표시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이니 범인의 전화번호나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찾는다 하여도 대부분 공중전화다 보니 범인을 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단서들은 지금 당장이 아닌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계기가 된다. 최첨단 기기를 무장하고 온 도시를 휘젓고 다닐 경찰 등의 단체는 없지만 그에겐 탁월한 직관과 그를 대신해 발로 뛰면서 현장을 감시할 흑인 소년 티제이가 있다.   

 

 요즘 너무나도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첨단 장비가 도입되어 긴박하게 쫓고 쫓기는 소설이나 영화가 많이 나온다. 이들에 비해 이 소설은 더디게 진행된다. 매튜는 거의 홀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증거와 증인을 찾아낸다. 물론 그의 곁에 일레인과 티제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대 과학기술이나 대규모의 훈련된 지원 병력이 없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연쇄살인이란 사실을 밝혀낸 것이 매튜란 점이다. 구역이나 자신들의 일에만 몰입해 있던 경찰들이 정보 공유를 꺼리고, 연관성을 놓친 반면 짧은 시간 그는 발로 뛰고, 다른 접근법을 통해 사건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전직이 경찰이었기에 이 정보들을 경찰에서 받고, 다시 경찰에게 보낸다. 사건은 심각해졌지만 아직 공권력이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소설 속엔 개성 강한 인물들이 많다. 사랑스런 일레인이나 티제이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내를 잃은 캐넌은 좀더 색다르다. 그의 직업이 마약상이지만 흔히 알고 있는 마약상과 다른 생활과 모습을 보여준다. 거래의 횟수를 늘이지도 않고, 마약으로 많은 돈을 벌지만 항상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그는 경찰들의 수사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자신의 조상을 말하면서 하나의 사업으로 마약을 거래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왠지 모르게 거부감을 가져오지 않는다. 분명한 악당인데 아내의 잃은 한 가련한 사내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와 복수의 불길이 활활 타고 있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이 소설이 처음 나온 년도와 지금을 살짝 머릿속에서 비교해본다. 범죄는 점점 잔혹해지고, 그 원인은 너무나도 단순해진다. 단지 쾌락을 위해 살인을 하고, 우발적인 충동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 사이에 범죄자들은 더 지능적으로 변한다. 수사기법과 과학수사 능력을 경찰이 키우지만 늘어만 나는 사건들을 모두 감당하기엔 늘 인력이나 지원이 부족하다. 그 조사가 합법의 범위에서 진행되어야 하니 더욱 힘들다. 이 틈을 파고 든 매튜의 활약은 그래서 더 돋보인다. 하나의 사건만 담당하고 끈기 있게 쫓는 그의 행동은 신뢰를 심어준다. 조급하게 사건이 해결되길 바라는 사람에겐 조금 더딜 수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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