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완벽한 하루
멜라니아 마추코 지음,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발견하는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 적지 않은 분량에 앞부분은 집중력을 많이 요구한다. 많은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을 시간 순으로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누구지? 어떤 관계지? 이런 의문을 품고 읽어나가다 보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현재와 과거를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게 된다. 어른에서 아이까지 등장하여 그들의 심리를 파헤치면서 단 하루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정이 지난 늦은 밤. 부오노코레 집에서 총성이 들린다. 이 소리를 들은 옆집 사람이 경찰에 신고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 집이 존경받는 경찰 부오노코레 집이란 것을 알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다섯 발의 총성이 들렸다고 하지만 문을 부수고 들어가기에 부담스럽다. 상부의 지시를 기다린다. 이 시점에서 시간은 24시간 전으로 돌아가 부오노코레와 피오라반티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안토니오는 경찰이다. 그는 국회의원 엘리오를 경호하는 일을 맡고 있다. 지금 엘리오는 국회의원 선거 중이다. 상대 후보보다 지지율이 떨어져 있다. 이런 엘리오의 하루는 처음과 마지막을 제외하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비록 두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안토니오와 엠마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부부였다. 하지만 이혼했다. 둘 사이에 딸 발렌티나와 아들 케빈이 있다. 안토니오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엠마라면 엠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 케빈이다. 이런 관계는 안토니오가 엠마에게 집착하고, 광기를 품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자식들에게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엠마에 대한 사랑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엘리오 가족들도 평범하지 않다. 엘리오는 정치에 몸을 담으면서 권력을 얻지만 선거에서 떨어지면 그 권력으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된다. 그에게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 아리스가 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다. 처음에 그가 다국적기업 맥도날드를 폭탄으로 날려버린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약점이 있다. 그의 계모인 마야다. 이제 삼십이 된 그녀는 엘리오와의 사이에 카밀라라는 귀여운 딸을 두고 있지만 자신의 삶이 결코 풍성하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그녀의 능력에 비해 실제 생활은 새장 속의 새 같은 느낌을 준다. 그녀에 대한 아리스의 마음은 자신의 신념 너머에까지 미친다.   

 

 이 두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물론 사샤란 선생도 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곳과 대상은 역시 안토니오와 엠마다. 안토니오의 엠마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사랑을 넘어 광기로 발전했다. 그의 행동이 아슬아슬하게 다가온 것도 그 광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의 아내였던 엠마는 눈부신 외모에 비해 너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경제적인 궁핍함은 삶의 여유를 잃어가게 만들고, 점점 자신을 비루하게 만든다. 그녀의 다른 쪽에는 마야가 있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역시 삶은 황폐해져간다. 이런 그녀와 아리스의 관계는 불안한 경계를 걷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다. 한 가족 간의 사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도시의 풍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계층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현재에서 느끼는 사랑을 그려낸다. 안토니오의 광기어린 사랑이나 아리스의 넘지 말아야 할 사랑이나 카밀라 같이 순수한 어린 사랑이 나온다. 그들의 사랑은 보면 행복을 느껴야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어린 카밀라의 사랑은 예외다. 사랑이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들의 행동과 마음에서 드러난다. 아니 쌓여간다. 점점 감정에 솔직하고, 묻혀가고, 쌓여가면서 밝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시간엔 불안감이 고조되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결코 쉽고 빠르게 읽히지는 않는다. 앞은 조금 더딘 진행이다. 시간을 가지고 읽다 보면 앞의 어수선한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경제적인 수준에 상관없이 현재 상황에서 마주한 어려움과 괴로움과 사랑을 펼쳐준다. 그리고 점점 속도가 붙는다. 마지막 순간엔 책에서 손을 떼기가 싫다. 동시에 마지막 이야기를 읽기 싫어진다. 최정점에서 마주할 사실이 가슴 아프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남겨놓았다. 그 때문인지 가슴 먹먹한 기분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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