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새 - 상 - 나무를 죽이는 화랑 Nobless Club 8
김근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작가 김근우를 만난 것은 <바람의 마도사>였다. 10대에 통신 연재 후 출간된 판타지였는데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기본은 서양 판타지였고, 기존에 있던 무협의 새로운 변주였을 뿐이었다. 그 후 나온 <흑기사>에서 그의 발전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최근에는 많은 권수가 있는 판타지는 멀리하고 있다. 시간도 부족하고, 약간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한 번 잡으면 끝을 봐야 하니 멀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단 두 권이다. 선택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결과는 만족스럽다.  

 

 일단 재미있다. 판타지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바리데기 공주 설화를 바탕으로 한국 설화들을 버무리고, 비틀어서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작가의 상상력과 잘 준비된 조사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 책은 부실한 내용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수목신앙과 무속신앙을 바리데기 설화와 엮어내면서 흥미진진하게 이어간다. 그래서인지 낯익은 등장인물과 설화가 등장하여 약간은 혼란을 주기도 한다. 공간과 시간이 실제 역사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어떤 부분에선 아쉬웠고, 다른 부분에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신라를 약간 바꾼 서야란 나라에서 시작한다. 물론 이 서야가 신라를 본떴지만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화랑제도나 세속오계 등을 그대로 사용하고, 처용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신라인 듯한데 연호가 다르고, 지명도 달리하면서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뭐 이런 것은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이라 큰 거부감은 없다. 

  

 

 소설 속 주요인물을 꼽으라면 두 사람 있다. 한 명은 화랑 바오 가람이고, 다른 한 명은 피리새다. 상권이 서야란 공간에서 벌어지는 왕위 쟁탈과 다음에 일어날 사건을 위한 준비작업이라면 하권은 본격적인 피리새의 여행을 다룬다. 작가는 이 과정을 지루하게 만들기보다 각 단계마다 하나의 사건을 일으키고, 이것을 해결하는 구성으로 지루할 새가 없게 만들었다. 최종 목적지를 향해 하나씩 관문을 돌파하는 RPG게임이나 기존의 판타지 소설 같다고 해야 하나! 그 과정에서 하나씩 밝혀지는 그들의 능력과 비밀스러운 과거는 읽는 즐거움을 준다.  

 

 첫 부분에 시선을 끈 것은 경무청 소속 두 요원이다. 수도국 직원을 사칭하고 가람을 조사하러 온 이 두 사람이 능청스러움과 눈치 빠른 행동으로 가람의 무거움을 들어 내준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등장은 사실 많지 않다. 하지만 금방 새로운 인물이 대신한다. 천문박사 가리박사다. 그가 등장하여 웃음을 유발한다. 피리새를 서역 가리온으로 모셔가서 제천의식을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하권은 바로 이 과정에서 각 나라별로 발생하는 사건이 있고, 이것을 피리새와 가람 등이 해결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인 구성인데 나름대로 잘 짜여있다. 그리고 소설을 읽다보면 점점 가리박사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그 비밀은 마지막에 드러나는데 이것도 작가는 중간에 문장으로 그 정체를 살짝 암시한다. 물론 그것을 알아차릴 정도라면 대단한 사람이다.  

 

이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신화나 무속은 기존에 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과 어느 부분은 동일하고, 어떤 부분에선 살짝 방향을 달리하고 있다. 삼국시대 역사를 빌려와 각각 다른 나라를 만들어내었지만 사실 이 부분이 아쉽다. 국가의 부침을 너무 길게 잡고 있고, 연호 사용이 서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 판타지라고 하면서 한국의 설화나 무속 신앙을 빌려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설의 기본 구성에서 기존 판타지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점은 실수는 적을지 모르지만 새로움을 기대하기엔 무리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역시 재미와 운명에 대한 해석이다. 운명을 확신하고 운명 저 너머를 보고 곧장 나아가란 말에선 숙명관을 벗어난 작가의 시각을 알 수 있어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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