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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평점 :
빌 브라이슨의 책은 처음이다. 그의 이름을 우연히 듣고 언제 책을 읽어야지 생각은 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요즘 필요한 영어와 관심 있던 미국 역사를 같이 다룬 책이 나왔다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일석삼조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책을 보고, 가볍게 넘겨보면서 생각보다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나 그랬다. 많은 영어 단어와 숙어가 나오고, 600쪽이 훌쩍 넘다보니 더디게 진도가 나갔고 예상한 시간을 훨씬 지나 모두 읽게 되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책 한 권이 주는 유익함과 재미가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발칙한 영어산책이란 제목과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란 부제는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미국 역사를 영어를 통해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순으로 나오는가 생각하는 순간 주제별로 내용은 변경된다. 그 주제별도 알고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한 것들이다. 물론 예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시대가 변하면서 그 가치나 의미가 바뀌거나 새롭게 등장한 산업이나 문화나 스포츠를 다룰 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영어다. 단어를 통해 그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미국이란 나라의 실체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모두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이플라워호의 도착과 그 이전 역사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미국 영어를 다루면서 마무리한다. 미국이 거의 모든 역사란 말에 딱 맞는 구성이다. 너무 방대한 분량에 내용이다 보니 이것을 제대로 정리하거나 요약하는 것은 무리고 작가에 대한 실례다. 사실은 나의 무식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을 이 속에 담고 있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실들 몇 가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몇몇은 너무 간략해서 아쉬웠고, 대부분은 놀랍고 재미있었다.
분명히 재미있는 책이다. 하지만 읽기는 상당히 괴롭다. 번역자와 편집자도 상당히 고생하였을 것 같다. 수많은 영어 단어와 숙어는 영어 울름증이 있는 나에게 고통을 주었고, 어떻게 발음을 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단어들을 속으로 읽어보고, 어딘가에서 본 단어인데 뜻은 생각나지 않고, 그보다 더 많은 단어는 발음도 뜻도 몰라 괜히 불친절(?)한 책에 화도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된 것은 이 책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미국의 모습은 현대 역사 교육이나 정보 속에서 우상화되고 미화된 인물의 실체를 하나씩 알게 한다. 미국 건국 3대 인물 이야기에서 그들도 시대의 한계나 한 명의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고, 에디슨 이야기에서 목적에 의해 부각된 그의 이미지 뒤에 숨겨진 실체를 다시 만나면서 현대 교육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콜럼부스에 대한 작가의 혹평은 조금 놀랍기도 했다.
눈길이 간 두 형제가 있다. 바로 라이트 형제와 맥도널드 형제다. 최초의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가 처음에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는 것과 이 둘이 함께 살았고 평생 독신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런데 맥도널드 형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두 형제도 역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사실에 두 선구자 형제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묘한 공통점이다. 다른 수많은 함께 사는 독신 형제가 있을 텐데 눈길이 간 것은 이들이 후대에 끼친 영향 때문일 것이다. 아! 맥도널드 형제가 현재 맥도널드 햄버거 창립자가 아니다. 비록 이 형제의 시스템으로 크록이란 인물이 체인점으로 성공시킨 것이다. 이런 예는 이 책 속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언어는 흔히 시대와 함께 숨을 쉰다고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뀌고, 새롭게 생기고 사라진다. 당시 신생 국가였던 미국이 아메리카에 도착하여 토착 언어와 결합하고, 자신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유통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초기 미국사를 보면서 현재 중국이 통일된 언어를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이 책이 나온 해를 보니 1994년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또 그의 이력에 영어사전을 만든 적도 있다. 재미나고 뛰어난 여행 작가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그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만든 책이다. 시간되시면 한 번 읽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