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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의학사를 다룬 책을 읽다 보면 늘 놀라운 사실들을 만나게 된다. 현대 의학 기준에서 보면 정말 무지의 극치와 오만으로 가득한 의사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기득권이란 거대한 힘으로 새롭게 발견되거나 밝혀진 사실을 억누르고, 무시하고, 왜곡한다. 물론 이런 현상이 의학계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사에 대한 신뢰를 생각하면 과거의 잘못은 현대의 불신으로 쉽게 연결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환자와 더 나은 의학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의사들을 보게 되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만약 그 중 한 명이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면 어떨까? 바로 이 소설은 이런 문제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소설을 두 개의 시간이 진행된다. 하나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캐롤의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한 여인의 시간이다. 전자가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간다면 후자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자의 경우는 분량이 짧다. 그렇지만 그녀의 간략한 행적은 그 시대 상황을 함축으로 잘 나타낸다. 캐롤이 탐정처럼 사건을 뒤쫓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여자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는 불과 백 년 전이란 사실이 무색하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캐롤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다. 소위 말하는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의학박사 학위를 딴 후 유명한 외과의사 오슬러 교수 밑에서 더욱 많은 의학 지식을 쌓고자 한다. 시간이 지나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교수의 신뢰를 얻는다. 교수는 그 때 새롭게 건설되던 한 병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 병원이 현재에도 이름을 떨치는 존스 홉킨스 병원이다. 교수는 그를 수석 보조의로 데리고 가려한다. 이 일은 그에게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한다. 하지만 한 동료의 독살과 한 여자의 죽음이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교수 밑에는 많은 의사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터크다. 그는 실력도 있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우연히 터크의 초대를 받아 캐롤은 하루 밤의 멋진 경험을 한다. 싸구려 가짜 샴페인 때문에 숙취로 고생하지만 그 밤의 여행은 이 소설에서 과거를 풀어내고, 미래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간들이다. 그런데 터크가 병원에 며칠째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수상하게 생각한 캐롤이 그날 밤 여정을 쫓아 그의 하숙집을 찾아간다. 추리와 대담한 노력 덕분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집에서 만난 것은 콜레라처럼 보이는 병으로 죽기 직전의 터크다. 곧 그는 죽는다. 전염병인 콜레라로 의심되기에 관청에 신고한다. 그의 시신을 병원에서 해부하다가 의사였던 그가 청결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 콜레라로 고생했다는 의심이 생겨 검사를 한다. 비소 중독에 의한 독살이다. 이제 사건은 전염병에 걸린 의사 이야기에서 살인사건으로 변하게 된다.
존스 홉킨스 병원으로 가기 전 캐롤은 교수와 함께 그 사회 상류층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여기서 놀라운 미녀 애비게일을 만난다. 그는 그녀에게 빠진다. 그녀는 미술적 재능이 상당하다.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은 놀랍고 즐겁다. 이 때 경찰은 터크의 집에서 놀라운 금액을 발견한다. 그는 이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다. 그리고 애비게일은 그녀가 좋아하던 레베카의 행방을 그에게 부탁한다. 혹시 그녀가 아프다면 병원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녀가 준 사진을 보자 그는 소설의 첫 장면에서 부검을 위해 들어왔던 한 여자의 시체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 사건은 하나의 연결 고리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두 개의 죽음과 그 시대의 풍경과 상황과 인식을 바탕으로 소설은 빠르게 진행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조치들이 그 당시는 배척당하고, 하나의 중독이 만들어낸 비극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게 된다. 그 시대의 모습이 과도기적 현상을 보여주고, 이제는 마약의 대명사가 된 헤로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된다. 견고하게 알리바이를 만들어놓고 독자에게 궁금증을 높이지만 그 반전이 놀랍기보다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된다. 의사가 탐정을 맡다보니 유리한 점이 많다. 의학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받지 않고, 재빠르게 해석한다. 이런 장점은 약한 반전을 가려준다. 미스터리보다 팩션의 재미가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