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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퍼홀릭 1 : 레베카, 쇼핑의 유혹에 빠지다 - 합본 개정판 ㅣ 쇼퍼홀릭 시리즈 1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뭔가에 중독된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활력소다. 하지만 그 중독이 쇼핑이라면 어떨까? 카드를 결제하고, 새로운 쇼핑백에 물건을 담는 순간 그 기쁨은 대단하다. 그렇지만 카드 결제일에 명세서를 보게 되면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한탄과 후회로 점철된다.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카드 명세서와 독촉장. 그리고 이런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기 위한 쇼핑의 악순환은 누구나 빠질 수 있다. 이 소설 속 레베카도 바로 그런 누구나 중 한 명이다.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레베카의 절제할 줄 모르는 쇼핑과 현실에서 눈 감고, 숨어버리는 모습에 화도 났다. 독촉에 대응하는 그녀의 행동은 자신의 얼굴만 가리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든 동물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녀의 쇼핑은 멈추지 않는다. 아니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절약을 위한 당연하고 올바른 선택이라고 자신을 세뇌한다. 세일즈 프로모션에 당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나 자신도 순간 뜨끔했다. 1+1 이나 포인트 적립은 그냥 넘어가기 힘든 유혹이기 때문이다.
한때 나 자신이 굉장히 합리적으로 구매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구매 형태를 좀 더 천천히 들여다보면 충동구매가 상당하다. 마트에서 음료수나 과자를 살 때, 인터넷에서 책 주문을 할 때,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전자제품을 구매할 때 나름 냉정하게 판단하고 신중하게 구입한다고 생각하지만 1+1 과 포인트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당장 볼 책도 아닌데 지금도 마음에 드는 작가나 책이 나오면 벌써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면서 주문을 한다. 더 이상 둘 곳도 읽을 시간도 없지만 책은 점점 쌓여간다. 싸다는 이유로 잘 마시지 않은 음료수를 사놓고 한두 달을 보낸 것도 여러 차례다. 이런 소비 습관을 가진 내가 그녀의 쇼핑 중독을 탓하기는 조금 부끄럽다.
레베카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새로운 브랜드와 쇼핑 중독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효과를 직접 만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순간 결제를 하고, 쇼핑백 가득 들고 나오는 모습은 읽는 순간 바보 같다고 느끼지만 좀 더 생각하면 주변에서 가끔 만나게 된다. 그냥 단순히 물건을 둘러보러 갔다가 최면에 빠진 것처럼 쇼핑백을 들고 나온다. 누군가의 말처럼 카드를 결제하는 순간 그 물건이 자기 것이란 기쁨을 느끼고, 그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한다. 뭐 나 자신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몇 차례 느꼈기에 공감한다. 그렇다고 레베카처럼 고가의 물건을 마구 사재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그마한 것이라도 사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게 더 문젠가?
이야기의 진행은 레베카의 시점을 따라간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현실과 환상이 가볍게 펼쳐진다. 결코 무겁게 진행되지 않는다. 그녀의 거짓말은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난 대목인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뻔한 거짓말이 통하고, 혹은 그 거짓말을 알고 있다고 하여도 속아주는 척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녀의 순진함을 만나게 된다. 그녀를 괴롭히는 금액이 많지 않는 1천 파운드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반복되는 소비 방식이 그것을 결코 쉬운 일로 놓아두지 않는다. 읽는 순간 냉정하고 객관적 시선에서 월급에서 빨리 갚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삶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려준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장면들이다.
그녀의 소비 방식과 중독을 잘 이해하지 못한 초반은 조금 더딘 진행이었다. 너무 뻔한 거짓말과 반복되는 쇼핑중독은 지루한 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구석으로 몰리고, 새로운 반전이 펼쳐지는 순간 이야기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흥미진진하게 흘러가면서 레베카의 숨겨진 매력이 발산된다. 물론 그녀의 이런 매력을 중간 중간에 작가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 매력을 충분히 읽는 사람에게 납득시킬만한 것이 아닌 것이 문제지만. 한 20대 쇼핑중독자의 삶을 통해 우리의 숨겨진 욕망을 바라보게 된다. 된장녀라고 욕할 정도지만 그녀의 어수룩하고 귀여운 행동은 재미있다. 이 시리즈의 끝에 만나게 될 그녀의 모습이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