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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셔넬라 Passionella
줄스 파이퍼 글.그림, 구자명 옮김 / 이숲 / 2009년 3월
평점 :
그림만 놓고 본다면 이 만화는 낙제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과도 다를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모습이나 행동이 사실적이지도 역동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대충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차분하게 읽기 시작하면 이런 그림체가 주는 거부감이나 미숙함은 사라진다.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와 은유들이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길지도 않은 이야기 속에 담아내는 함축적인 의미와 여운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모두 6편이다. 표제작 <패셔넬라>부터 <관계>까지다. 개인적으로 <꼬마 병사 먼로 이야기>와 <해롤드 스위그>가 재미있다. <꼬마 병사 먼로 이야기>는 작가가 처음으로 그린 만화로 군 생활을 기반으로 놀라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꼬마 먼로는 네 살이다. 그런데 우연히 날아온 신검 통지서를 받고, 통과하게 된다. 황당하다. 이 보다 더 황당한 것은 그를 본 누구도 네 살 어린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자신이 네 살이라고 외쳐도 그 많은 장교와 군의관과 동료들이 그렇게 보지 않는다. 딱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속에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자신들이 보려고 하는 것만 보는 습관과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를 표출한다. 극단적 표현이지만 이것을 조금만 완화하면 우리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눈 가리고, 귀 덮고,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네 살로 드러난 먼로를 두고 그들이 펼치는 홍보는 마지막 먼로의 어머니가 먼로를 겁주기 위해 펼치는 방법과 더불어 씁쓸한 느낌을 준다.
<해롤드 스위그>는 대단한 운동선수다. 그는 누구보다 공을 멀리 치고, 축구공을 멀리 차고, 빨리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것에 관심 없다. 그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문서정리다. 이 특별한 능력을 살리지 않는 것을 사람들은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특히 소련에서 뛰어난 선수들이 나와 미국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매국노니 스파이니 하면서 그를 괴롭히고 매도한다. 전 국민들이 그가 올림픽에 나가 소련 선수들을 이겨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는 전혀 관심이 없다. 계속되는 사람들의 괴롭힘에 그가 출전을 결심한다. 이 결심을 두고도 여야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공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누구의 우승을 자신들의 당에 이용한 것을 생각나게 한다. 올림픽에 출전한 스위그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소련선수들이 세운 점수와 똑같은 점수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시 그를 욕하고 매도한다. 이길 수 있는데 이기지 않았다고. 이 이야기를 보면서 나 자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국가를 위해 뛰지 않거나 열심히 하지 않은 선수들을 매도하는 현실이 떠올랐다. 국수주의와 전체주의의 망령이 떠돌아다니는 것 같다.
표제작 <패셔넬라>는 영화판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알라딘의 램프와 신데렐라 스토리를 섞어 놓았다. 하지만 결국엔 진실된 삶을 이야기한다. 굴뚝 청소부 넬라가 패셔넬라가 되어 엄청난 인기인이 되지만 결코 만족스럽지 않는 현실은 물질적 풍요나 거품 같은 명예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 편의 동화 같은 전개와 마무리가 재미있다. <조지의 달>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신과 인간. 나와 타인. 존재의 의미와 가치. 일상의 삶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보다 외부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를 비유한 것일까? 상상만으로 결코 삶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의문투성이다. <외로운 기계>는 월터 페이가 남들과 잘 지내지 못하다가 외로운 기계를 만들어 그와 대화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매력남으로 발전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이전에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배척하거나 배반했다. 그래서 그는 늘 불만에 차 있었다. 사랑이 부족한 그는 친구를 원했고, 그 친구를 기계로 만들었다. 이 친구와 그는 대화를 하고, 위로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매력남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곧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점점 기계를 멀리한다. 이 과정은 그가 사람들에게 받았던 것들과 유사한 행동이다.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관계>는 그림으로만 표현되었다. 남여의 단절과 사랑과 관심이 단절과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굉장히 함축적이다. 숨은 그림처럼 그 의미를 하나씩 찾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