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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우울증 - 역사를 바꾼 유머와 우울
조슈아 울프 솅크 지음, 이종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저자는 책 마지막 장에 자신의 목적을 밝힌다. “링컨이 생활하고, 고통받고, 성장하던 모습을 가능한 명석하게 보여 주자는 것”(396쪽)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책의 목적이자 저자가 계속해서 말하는 것은 링컨의 삶 속에 자리 잡은 우울증을 통해 그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화려한 링컨의 업적이나 전설을 기대했다면 아마 책을 빨리 덮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우울증이 어디에서 왔는지, 유머로 우울증을 맞서 싸운 그와 우울증이 그의 위대함에 끼친 영향을 주제별로 연대순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간 순으로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후대에 그를 칭송하고 전설화한 수많은 이야기가 아닌 인간 링컨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젊었을 때 사랑했던 여인 애너 메이스 루틀리지가 죽은 후 친구들이 그의 자살을 걱정했다는 일화나 우울증으로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들은 피상적이자 하나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던 링컨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울증. 사실 어릴 때는 이 병이 얼마나 위험한 병인지 몰랐다. 이 증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책이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위험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증상으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가끔 역사 속 위인들이 힘든 고난과 병마를 이겨내고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을 보았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한 나에겐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증상이나 병에 대한 경험과 사실들을 만나면서 그 위대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이제 그 위대함에 한 명 더 이름을 올린다.
쉽고 빠르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미국의 역사에 대해 사전 지식이 있다면 좀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링컨에 대해서는 어린이용으로 나온 위인전 중 일부와 전설이나 신화처럼 부풀린 이야기만 알고 있던 사람에겐 그도 우리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물론 그의 삶이 나처럼 평범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사랑에 아파하고, 자신의 삶을 잠식하는 우울증과 함께하면서 유머로 이를 승화시키고 이겨내는 장면들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저자는 링컨만을 이야기하기보다 그 시대의 풍경과 삶도 같이 보여준다. 그 시절의 의학이나 사람들의 삶을 현재의 관점이 아닌 그때의 관점으로 보여주면서 현재와 달랐던 그들을 그들의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현재의 시선을 없앤 것은 아니다. 기본 시각에선 변함없이 현대의 성과물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다만 그 시대의 한계를 말해주면서 그를 똑바로 보게 만든다. 이것은 역사나 한 인물을 바라보는데 매우 중요하다.
책 속 많은 이야기 속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들이 있다. 그가 성취한 위대함을 개인적 고통에 대한 승리로 보지 않고, 우울증이라는 기질로부터 자연스럽게 성취된 것으로 본다거나 그의 생애를 변모의 스토리가 아닌 통합의 스토리로 보고 이 내면의 힘이 위대한 사업의 불을 계속해서 발화시키는 기름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남북전쟁에서 양측의 공통 잘못을 인정하고 공통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 그 누구에게나 자비를!”(352쪽)를 외친다. 이 연설문의 일부가 대중적인 표어가 되지 않고 그들이 끝없는 징벌을 바라면서 그 당시에 엄청난 후유증을 가져왔고 현재까지 그 여파를 미쳤다는 점에선 그의 암살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