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술작품이었을 때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표지를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상당히 인상적이다. 신체 각 부위가 해체 분리되어 있는 모양인데 이것을 보면서 소설 속 화자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예술작품인 화자의 모습이 자세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상상력으로 예술작품이 된 주인공을 복원해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 표지의 모습이 자꾸 끼워든다. 그 만큼 표지가 인상적이고, 예술작품인 주인공의 모습이 궁금하다. 그렇지만 이런 외형적 호기심은 이 소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이런 호기심이 사회현상에 대한 작가의 엄밀한 연출인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의 나는 자살을 하기 위해 벼랑 위에 서있다. 이미 몇 번 자살을 시도했지만 불행(?)하게도 실패했다. 이번에 고른 장소는 199미터 높이의 벼랑으로 떨어지는 도중에 날카로운 바위에 산산조각나거나 바다에 빠져 죽을 확실한 곳이다. 마음을 다잡고 뛰어내릴 준비를 하는데 한 남자가 그에게 말은 건다. “스물네 시간만 기다려주시오!” 이 말은 악마의 속삭임이자 유혹이다. 이 말을 듣고 이에 보석을 박은 남자에게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그리곤 그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간다. 그가 바로 그 시대에 유명한 예술가 제우스 페테르 라마다.  

 

 주인공에게 악마의 유혹 같은 제안을 하는 이가 제우스라면 그에게 삶의 의지를 빼앗고 우울증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의 쌍둥이 형들이다. 피렐리 형제라고 불리는 그 형들은 빛나는 외모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하지만 그 형들보다 못한 외모를 가진 그는 상대적으로 홀대받는다. 아니 홀대받는다고 그가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학교에 가서 그가 그 유명한 피렐리 형제의 동생이라고 말했을 때 나온 반응에 상처받은 장면과 자신의 외모를 형들의 것으로 착각했던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 그는 현실의 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곤 수년 동안 그 바닥에서 점점 더 밑으로 가라앉는다.  

 

 화려한 형들의 시선에 가려지고, 자신을 잃어가면서 삶의 의지를 잃은 그에게 제우스의 제안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이다. 자살로 죽음을 위장하고, 제우스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순간 그는 인간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변하게 된다. 처음으로 바뀐 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놀라움과 경악으로 그를 보게 된다. 아니 정확히는 그 실체를 깨뚫어 보았다기 보다 제우스의 놀라운 상술과 권위에 압도당한다. 이 놀라운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환호와 관심과 반응에 놀란 그가 기뻐하고 즐거워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기쁨도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그가 사람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하나의 상품으로 다루어지면서 그 존재 가치가 변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의 자의식은 싹트고, 그가 나간 해변에서 만난 화가와 그 딸을 통해 예전에 몰랐던 삶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 풍부한 이야기를 담기보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간결하고 빠르게 진행된다. 인간에서 예술작품으로 변신하고, 예술작품으로 팔려나가고, 인간으로보다 하나의 물건으로 인식되는 그 과정을 보다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살짝 엿보게 된다. 외모지상주의니 상업주의니 하는 거창한 단어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아담 2호’로 불리는 그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해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담 2호’로 그가 전시된 곳에서 벌어진 다양한 퍼포먼스 장면과 마지막 법정 대결은 이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생각한다. 예술이란 외피를 뒤집어쓰고 상업적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작업들과 인간으로 보기 보단 그들이 구입한 금액에 집착하는 모습에서 본질보다 겉으로 드러난 것들이 지배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게 된다. 물론 나 자신도 이런 사람들과 다른 점이 없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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