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샌드맨 The SandMan 1 - 서곡과 야상곡 ㅣ 시공그래픽노블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익숙하지 않지만 낯익은 그림체다. 얼마 전에 읽은 <배트맨 이어 원>의 그림과 상당히 달라 어색함마저 든다. 한국과 일본 만화에 중독되어 있던 나에게 유럽이나 미국 만화의 그림은 늘 낯설다. 흑백보다 컬러로 그려진 것도 역시 그렇다.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눈이 없는 것도 한 몫 한다. 그냥 대충 둘러보면 실망할 수 있지만 차분히 앉아서 읽다보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잘 짜인 구성과 풍부한 패러디와 은유는 비록 역자의 해석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현재 샌드맨은 시리즈로 나온 모양이다. 그 중 첫 권이다. 도입부다. 어떻게 샌드맨이 인간 세상에 떨어지고, 자신의 권능을 잃고, 다시 되찾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이 직선적으로 나아가기보다 인간의 욕망과 신화, 판타지 등을 건드리면서 진행한다. 만약 역자의 주석들이 없었다면 그냥 대명사나 뭔가 있겠지 하는 정도로 지나갔을 것들이 널려있다. 서양 신화와 판타지와 코믹스에 어느 정도 지식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이 부분에선 번역본의 장점이 드러난다.
이 만화의 주인공인 샌드맨이 지상으로 떨어진 것은 사람의 욕망 때문이다. 1차 대전 당시 죽은 자신의 아들을 살리고자 한 해서웨이 박사와 마법서로 죽음을 잡으려고 한 버제서의 욕망이 결합한 결과다. 마법서와 마법진으로 죽음을 가두려고 하지만 그들이 가둔 것은 바로 샌드맨이다. 혹은 꿈이자 모르페우스다. 이 때문에 세상 곳곳에 꿈을 잃거나 불면에 빠지거나 잠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잠과 꿈이 희망이자 휴식이자 오늘과 내일을 연결하는 고리임을 보여준다.
자신을 가둔 마법진에서 벗어나 복수를 하고, 자신의 힘을 담은 도구를 찾아 떠나고, 자신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이 책 속에 담겨있다. 그 과정은 결코 밝지도 유쾌하지도 않다. 오히려 어둡고,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호러물에 가깝다. 이성을 마비시키고, 극대화한 상황 설정은 낯선 그림에도 불구하고 빠져들게 만든다. 거칠고 세련되지 않은 그림과 보통의 한일 만화보다 많은 대사는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게 다가온다. 약간 의외다. 하지만 잘 짜인 구성과 설정과 이야기가 주는 재미다.
시리즈의 첫 권이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잘 마무리되어 있다. 연작으로 이어지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24시간>이다. 샌드맨의 권능이 담긴 루비를 이용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엄청나게 원초적이고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다. 인간의 욕망에 솔직해지고, 잔혹함에 놀라고, 불안과 공포에 흔들리는 사회가 인상적이다. 또 거칠게 느껴졌던 그림들이 뒤로 가면서 익숙해지고, 스토리와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근에 읽은 몇 권의 그래픽노블 때문에 앞으로 소장하고 싶은 책의 목록이 점점 더 늘어난다. 이 놈의 욕심은 언제나 그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