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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랜만에 딘 쿤츠의 소설을 읽었다. 십 수 년 전 고려원에서 출판된 그의 작품들은 나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말하듯이 늘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은 갈수록 그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그후 한 동안 그의 작품을 새롭게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비채에서 <남편>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다시 거의 2년 만에 이 소설이 비채에서 나왔다. 하얀 표면에 검은 글자들이 간결하게 표시된 인상적인 표지로 말이다.
벨로시티, 속도란 뜻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의 소설은 잘 읽히고 재미있다. 속도감 있게 이야기는 나아가고, 간결하고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몰입도를 높여준다. 기존의 소설들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다루었다면 이번엔 최악의 살인자와 평범한 바텐더의 대결이다. 전작 <남편>과 이 책과 미 출간작인 <THE GOOD GUY>를 평범한 남자 3부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이 작품에선 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주인공 빌리를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살인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선택과 시간제한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딪히는 선택의 순간은 읽는 나도 고민하게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한 명은 죽는다. 처음 이 쪽지를 발견했을 때 단순한 장난으로 생각하면서도 불안감을 느낀 것은 바로 자신의 선택에 의해 누가 죽을지 정해진다는 점이다. 평범한 바텐더인 그가 고민하다 친형과도 같은 경찰관 네드를 찾아간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네드는 이것을 장난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실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빌리가 두 번째 쪽지를 발견했을 때 보인 네드의 반응과 쪽지의 내용은 다음 장면을 예측하게 만든다. 이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네드가 살해당한 것이다. 이제 쪽지는 장난이 아니고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다. 이 쪽지는 그에게 선택을 계속 강요한다. 선택을 거부하는 것조차 또 다른 선택이다. 이렇게 쪽지가 올 때마다 사람이 죽는다. 상황은 모두 빌리에게 불리하게 조작되어 있다. 그리고 이 악당은 빌리에게 직접적인 상처를 입힌다. 이 상처보다 더 그를 겁먹게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고, 계속해서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선택하도록 강요하면서 시간이란 압박을 부여한다. 몇 분이나 몇 시간을 주면서 강요한다. 피할 길은 없다. 아니 유일하게 피할 방법이 있다. 그것은 이 상황을 만들어낸 자들 찾아서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주변에서 맴돌며 빌리를 감시하고, 위험 속으로, 긴장 속으로, 공포 속으로 몰아간다. 직관에 의해 범인일 것 같은 인물이 있지만 분명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나 전개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다른 부분이다. 빌리가 사건을 풀어가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다. 기존의 소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들이다. 극적인 장면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보다 단순해서 오히려 힘이 빠진다. 그래서인지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