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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설공주 이야기 ㅣ 흑설공주
바바라 G. 워커 지음, 박혜란 옮김 / 뜨인돌 / 2002년 8월
평점 :
페미니즘 동화라는 것에 일단 시선이 갔다. 백설공주가 아닌 흑설공주라는 단어에 흑인을 연상하였지만 흑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존의 동화를 작가가 페미니즘 시선으로 개작하였다는데 읽는 내내 즐거움보다 편하지 않는 감정에 쌓여있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교차하면서 안타까움과 자신에 대한 반성도 동시에 생겼다.
많은 이야기 중 한 편인 흑설공주에 대해 생각해보자. 흑설공주에 대한 묘사를 보다보면 하얀 피부에 칠흑같이 검은 머릿결이 나온다. 예상한 검은 피부가 없었다. 백인에 미녀인 그녀다. 작가는 이야기 앞에 사악한 계모에 대한 기존의 시각에서 두 가지 의미를 유추한다. 첫 째는 계모의 미모가 흑설공주보다 떨어지는 것에 분노한 것은 남성들에게 더 큰 관심사였지 여성은 경쟁하지 않고 수천가지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과 두 번째로 여성의 영적능력의 마지막 보루인 마법이 교회의 마녀사냥 선포로 그 위상이 추락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의미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전개가 이루어지는데 첫 번째 외모에 대한 묘사다. 헌터경의 외모가 결코 뛰어나지 않음과 그 지위가 높지 않음을 이유로 흑설공주는 그를 거절한다. 여기서 작가 또한 외모에 대한 그녀의 바람을 그대로 노출한다. 더불어 왕자에 대한 환상까지 보여준다. 두 번째 헌터경이 복수를 준비한다는 것과 계모가 이를 막는다는 것인데 계모가 일곱 난장이에게 금은보화를 주어 이를 막는데 이 처리 또한 대화나 합리적인 방식이 아닌 폭력에 의한 것이다. 남성의 폭력에 대한 글을 이 이야기 속에 수없이 말하는 작가가 문제 해결 방식으로 보디가드의 외형을 가진 폭력에 기대는 모습은 여성이나 왕자 등의 외모를 아름답고 잘 생긴 것으로 그린 다른 이야기와 더불어 신뢰성을 잃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나의 예외인 못난이와 야수는 제외하고.
외모에 대한 이야기에서 예외인 못난이와 야수는 또 다른 편견이 있다. 야수의 외모를 사실에 충실하게 묘사하였다지만 왜 하필이면 두 사람 모두 외모가 부족한 커플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여자가 못난이라도 야수는 충분히 여성의 아름다운 마음을 아는 멋진 왕자일 수 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 전체에서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뛰어난 사람끼리, 부족한 사람은 부족한 사람끼리 어울리는 외모 지상주의가 곳곳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 동화처럼 한결 같이 왕자나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다는 설정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자연스러운 반영이 아닌가 한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현재 떨어져 있는 여성의 권리를 제대로 신장시킬 필요가 분명히 있다. 나 또한 남자이기에 남성 본위의 마음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남성을 잔혹하고 파괴적이고 불쾌한 대상으로 몰아가는 것은 여남평등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우위를 주장하는 듯하다. 현대 여성들이 가지는 시각을 보면 남자보다 더 외모 지상적이고 더 욕심이 많고 파괴적인 경향도 보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란 영향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쓰진 이 동화처럼 일방적으로 남성을 몰아가거나 편견이 가득한 경우 그 본래의 의도가 좋다고 하여도 쉽게 동의를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혹 이 글에 나의 편견이 가득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