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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어떻게 날 수 있지
쑤퉁 지음, 김지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무협을 많이 보아서인지 뱀이 하늘을 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전설처럼 말하던 하늘을 나는 백사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아는 척하면서 말한 적도 많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뱀이 날 수 있는지 묻는 이 제목에 의문 부호를 달게 된다. 당연히 날 수 있는 뱀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물론 이 소설은 뱀이 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도시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조금은 희극적으로, 약간은 은유적으로, 사실적으로 말한다.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면 변하는 시대에 대한 적응기이기도 하다.
많은 등장인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세 명으로 중심인물을 잡을 수 있다. 성형미인인 금발소녀와 인생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렁옌과 좋게 말해 채권추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조폭과도 같은 커위안이다. 이 셋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인물을 꼽으라면 커위안일 것이다. 그 도시 중심가인 기차역 근처에서 생활하고, 이름을 알리고, 사건을 만드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급격히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그 도시에서 재빨리 적응하지만 결국 그 자신이 완전히 변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그와 금발소녀와의 로맨스는 매춘과 연정의 경계를 걷게 되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함을 느끼고 연민을 자아낸다.
소설은 금발소녀가 기차역 여관에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멋진 몸매와 외모에 금발로 물들인 그녀의 등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그녀의 행동은 결코 세련되지 못하다. 기차역 여관에서 일하는 렁옌에게 성형을 한 사실이 드러나고, 목욕탕에서 뱀을 만나 나체로 튀어나오는 사건으로 신비감이나 매력을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후 그녀가 그 도시에 온 목적이 깨어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은 성공에 대한 열망과 도전이 결코 만만하고 녹녹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자신감이 자괴감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가슴 한 곳을 아리게 만든다.
렁옌은 그렇게 표시 나는 인물은 아니다. 그 도시의 미남과 결혼하고, 그가 자살한 후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새롭게 만나던 인물과 깨어지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하지만 그 도시에 흘러넘쳤던 뱀 때문에 활성화된 뱀 요리 전문점의 매니저로 재탄생하면서 새롭게 부각된다. 성공에 대한 열망과 자신감으로 혐오하는 뱀과의 동거(?)를 멋지게 표현하는 그녀는 후반으로 가면서 금발소녀의 몰락과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커위안, 금발소녀, 렁옌은 서로 약하게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급속하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성공에 대한 열망과 새로운 환경 적응을 위해 몸부림치고, 순간적 판단 실수나 오해나 말실수로 끔찍한 변화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도 결코 유쾌하고 즐겁지 않다. 시간적 배경도 새천년이란 대변혁의 시기로 잡아서 시대의 급속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물론 시간이 단속적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뱀 사건이 벌어진 6월과 마지막 새천년을 알리는 순간까지의 시간들은 각각의 사람들이 겪는 변화를 단속으로 알려준다. 그 시간을 자연스럽게 견디고 넘어가느냐, 아니면 그 시간의 벽을 넘지 못하느냐에 따라 삶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