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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12월
평점 :
아리스가와 아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제야 읽었다. 한동안은 이 작가의 책이 언제 출판될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이제는 몇 권이 번역되어 나왔다. 다행이다. 많이 말해지는 외국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지 않으면 호기심이 많이 생긴다. 읽고 나면 별것 없네 하는 마음도 생기지만 확인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러다 가끔 마음에 맞는 작가가 생기면 더 많은 갈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때마다 원서를 읽을 수 없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지기도 한다.
Y의 비극 ‘88 월광게임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Y의 비극이란 이름에서 엘러리 퀸의 작품이 연상된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이야기의 화자이자 작가의 이름과 같다. 엘러리 퀸의 작품도 화자는 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퀸의 소설에서 탐정이 퀸인 반면에 아리스가와의 소설에선 그가 속한 미스터리 동호회의 선배 에가미가 탐정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학생시리즈의 경우 에가미 시리즈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이것 외에도 퀸의 소설처럼 작품의 중간에 독자에 대한 도전장을 던진다. 퀸의 소설에서도 실패를 자주 하였지만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작품에 대한 정보는 책 후반에 나오는 후기에 잘 나온다.
초반을 읽으면서 고전 서양 미스터리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화산으로 고립된 산을 배경으로 펼치는 밀실 미스터리는 옛 향수를 불러온다. 신본격의 기수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거대한 산을 밀실로 만들어놓고 한 여자의 실종과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그들과 함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사라진 두 인물을 말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순수하게 그들 속에서 알리바이와 단서를 추적하면 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읽은 추리소설 덕분에 괜히 다른 방향도 검색을 한다. 어설프게 읽은 독자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끔 이전 기억 때문에 범인을 쉽게 맞추기도 하지만 대부분 놓친다. 작품의 특성을 무시하고 다른 소설의 영향 아래 놓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밀실과 같은 분리된 화산이라는 공간과 그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살인이 벌어진다면 분명히 범인은 그들 중에 있다. 이런 고정된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작품도 있지만 이 소설은 엘러리 퀸을 존경하고 그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고전 추리작가 중 가장 독자들과 공정한 시합을 펼친다는 퀸의 방식을 따른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 남겨진 다잉 메시지.
이 소설을 재미있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화자가 속한 동아리가 미스터리 동호회라는 것이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평을 하고, 트릭을 분석하고, 만드는 그들이 아닌가. 덕분에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들이 다른 추리소설을 인용하는 장면에서 옛 기억을 더듬기도 한다. 읽지 않은 작품에선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뭐 이런 방식도 이미 다른 작가가 사용한 것이기는 하다. 그것이 딕슨 카였던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약간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장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사실 작가의 초기작이다 보니 조금 허술한 면이 보이기도 한다. 재능은 돋보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구성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 약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매력적이다. 상황을 만들고, 진행하는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다. 거의 20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 겨우 학생 아리스가와 시리즈가 4권 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 아쉽다. 그 4권도 작년에 나왔다고 한다. 아직 이 시리즈의 첫 권만 읽은 나에겐 3권이나 남았다는 즐거움이 있다. 뒤로 가면서 더욱 완성도가 높아지는 듯하니 금상첨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