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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기행 1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십 수 년 전에 나온 여행서가 지금 읽어도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왜 일까? 더구나 그가 찍은 사진들은 요즘 나오는 여행서에 비하면 어둡고 무겁고 초점도 잡혀있지 않다. 제대로 보기 위해 인상을 쓰면서 집중을 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거리의 풍경도 화려함과 거리가 먼 뒷골목과 지나간 기억 속에나 존재할 풍경이다. 그가 묘사한 거리와 사람들은 이제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진에 빨려 들어가고, 그가 만들어낸 문장들에 집중하게 된다. 왜 일까?
아마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 다른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가 관찰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삶에 반하거나 그의 운문 같은 문장에 끌리거나 삶의 공간과 사람들을 찍은 사진에 빠지거나 했을 것이다.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좋았을 수도 있다. 나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매력으로 이 책에 열광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수많은 이유가 가슴에 품고 여행을 떠나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순히 정보만을 원했다면 이 책은 너무나도 불친절하다. 추억을 화려하게 덧칠할 유적지도 없고, 맛있는 음식을 맛볼 식당에 대한 안내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여행 에세이를 읽다보면 정보보다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더 끌린다. 화려하고 낯선 풍경도 사람을 끌어당기지만 실제 현장에서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속에서 만난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활기나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내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찾기 때문이다. 나를 우리로 바꾸면 그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변하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정보는 빈약하지만 기억과 추억이 살아있고, 낯선 이국의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모습이 있기에 더욱 가슴속으로 다가온다.
처음 이스탄불을 묘사한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예전에 읽은 소설이나 다른 책들에서 만난 그곳의 인상이었다. 하지만 계속 읽으면서 만나게 된 사진들은 지하철 속에서 보기 민망한 나체의 사진들이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수수료를 받는 여자의 삶은 이국적으로 다가오고 재미있지만 그 순간만 기억될 뿐이다. 그의 행적을 따라 가면서 그의 생각들이 나오면 일부는 수긍을 하고, 일부는 과연 그럴까 의문을 제기한다. 이제는 세계화나 개방의 물결 속에 너무나도 변한 그 나라들을 생각하면서 과거의 추억과 기억을 회상한다. 티베트의 한 사원에서 이게 사람이 먹을 음식인가 하다가 그 맛을 깨닫는 장면에선 풍요 속에서 낭비와 사치로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반성한다. 광물과 식물의 세계로 나눈 두 문화의 접경지대나 인상을 말하는 대목에선 다시금 그 사람들의 표정을 찾아본다. 하지만 나는 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길 위에서 자신을 드러낸 사람에게만 보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서울의 과거 모습은 아득한 고대처럼 느껴진다. 아련한 추억이 살아나고, 이제는 고층 아파트로 한강을 둘러싼 흉물스러운 풍경에서 작가가 느낀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뒤적인다. 전철 속에서 보기 민망했던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풍경에 잠시 눈길을 던진다. 많은 사진과 두껍지 않은 분량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더디게 읽힌다. 사진에 눈길이 오래 머물기도 하고, 문장의 아름다움과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잠시 멈추기도 한다. 한 편의 장편시를 읽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뒷골목 후미진 곳에서 만나는 창녀들의 삶에선 희미한 정액의 냄새보다 삶의 치열함과 고단함과 생존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