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침대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편 세 권과 단편집 한 권이 지금까지 나온 그의 모든 책이다. 이 책은 네 번째 출간된 소설집이다. 그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아마도 <아내가 결혼했다>부터였을 것이다. 이 책으로 그는 제2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그 당시 아내의 두 번 결혼으로 인한 이야기가 남녀 사이에 논쟁이 되곤 했다. 얼마 전에는 영화로 나와 다시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본 주변사람들은 손예진의 매력을 예기하지 영화의 내용은 그냥 그랬다고 한다. 원작이 주는 재미가 영화 속에서 살아나지 못한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영화로 박현욱을 만났다면 나는 <새는>이란 교육방송 드라마로 만났다. 그 당시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고,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책으로 처음 만난 것은 <동정 없는 세상>이다. 앞에서 말한 작품들은 모두 단숨에 아주 즐겁게 읽었고, 그의 가벼움을 탓하는 평론의 일부를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성석제의 소설 이후 남자 작가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기에 그에 대한 기대는 작지 않다. 이런 연장선에서 단편집이 나온 것은 분명히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단 한 번도 그의 단편을 읽어보지 않은 나에겐 특히 그렇다.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의 가벼운 듯하면서 경쾌한 문장은 이번에도 변함없이 즐겁고 빠르게 읽힌다. 동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의 문체가 주는 즐거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나에게 매력적인 작가다. 그런데 표제작이자 첫 작품인 <그 여자의 침대>는 예전에 읽은 느낌과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침대의 크기와 삶을 한 여자의 내면을 통해 보여주는데 이전에 보아온 밝고 가벼운 느낌이 아니다. 짧은 문장은 약간 건조해보이고, 현실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마음은 짧은 문장으로 더욱 스산하게 느껴진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소설에선 예전에 읽은 그의 느낌이 묻어난다. <벽>은 회상으로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동시대의 살아온 나의 경험과 비슷한 점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생명의 전화>에선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한 남자의 발버둥이 현실에 쉽게 안착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연체>는 도서 반납을 요청하는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한 현실의 삶에 대한 비루함이 문득 가슴으로 파고든다. <링 마이 벨>에선 이사라는 집안의 큰 행사를 두고 벌어지는 가족내부의 분쟁과 금전 능력이 부족한 남자의 한탄이 현실의 3~40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편인 <그 사이>는 다이어트 하는 과정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데 아이의 상실과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부부 사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잘 보여준다. 이 앞에 말한 소설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혼과 과거사다. 어쩌면 작가는 현재의 삶에서 만족하지 못하기에 과거를 이야기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의 결과를 이혼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이무기>와 <해피버스데이>는 전체 작품에서 가장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이무기>는 한국기원 프로입단을 앞둔 강이란 연습생 이야기다. 한 판의 대 결전을 앞둔 그의 내면과 바둑의 진행을 병행하면서 한 사람의 열정과 욕망을 드러낸다. 얼마 전 한국기원의 연습생 제도를 비판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기에 더 가슴으로 다가온다. <해피버스데이>는 어쩌면 작가의 초기작과 가장 닮아있다. 국민학생 남자를 통해 향수를 자극하고, 그 시절 순수했던 나로 돌아가게 만든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여자를 괴롭히고,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말을 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전작들을 떠올렸다.

 

많지 않은 분량에 빠르고 경쾌하게 읽히는 단편집이다. 작가가 왜 이렇게 많은 이혼 남녀를 소설 속에 등장시켰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현재가 결코 어제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시대로의 귀환은 반가움과 아련한 추억을 생각나게 한다. 무거움보다 현실을 쿨하게 그려내어 약간은 가벼운 느낌도 들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썰썰함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의 내면은 어쩌면 그 여자의 침대에 놓은 한 켤레의 빨간 구두처럼 낯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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