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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숨결
로맹 가리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로맹 가리를 처음으로 만난 작품도 단편집이었다. 그 작품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였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기에 작가는 기억하지 못해도 제목은 기억하고 있었다. 덕분에 친구에게 이 책을 열심히 추천하기도 했다. 그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가리의 책을, 아자르의 책을 한 권씩 읽게 되었다. 사실 처음만큼 강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물론 이것은 너무 기대한 탓도 있다.
이 유고집을 읽으면서 두 편이 조금 이상하게 읽혔다. 표제작인 <마지막 숨결>과 <그리스 사람>이다. 나중에 옮긴 이 후기를 읽다보니 미완성 원고라고 한다. 이때 나는 몰래 한숨을 쉬었다. 읽을 당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내가 잘못 읽거나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두 편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숨결>의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의문스럽다. 화자가 죽이려는 사람의 정체를 일찍 파악했지만 어딘가에서 멈춘 듯한 마지막 장면은 정말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어쩌면 매력일 수도 있지만 중단된 듯한 느낌이 강하다. <그리스 사람>은 혹시 장편으로 생각하고 쓴 글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유고집에서 가장 긴 분량이기도 하지만 이 유작이 이야기의 설정 부분만 말하면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반에 앞뒤가 맞지 않는 단어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혹은 부분적인 사실에서 어색한 느낌을 주는데 완성되었다면 상당히 재미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이 유고집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1935년과 1970년 사이에 쓰인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평을 빌리면 “그가 밟아온 정신적 여정을 보여준다.”고 한다. 가리의 비전문가의 입장에선 잘 느낄 수 없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일곱 편 중에서도 더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 비교적 긴 작품들인데 <폭풍우>, <마지막 숨결>,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그리스 사람>은 너무 많은 이야기가 빠진 듯하여 제외한다. 이 세 편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서사가 조금 더 살아있기도 하다.
<폭풍우>는 폭풍우가 오기 직전 외딴섬에 살고 있는 부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다. 이미 남성으로의 힘을 잃은 의사와 달리 그녀의 성적 매력에 이끌리는 외지인과 부인의 관계와 마지막 반전이 즐거움을 주었다. 부인의 욕망과 외지인의 욕망이 충동하고, 참고, 참지 못하는 관계 속에 드러나는 사실이 긴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숨결>은 글의 리듬과 이야기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앞에서 이야기한 불완전한 완결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사랑스러운 여인>은 미인에게 약한 남자와 그런 남자 위에 군림하는 여자를 보여준다. 이성적 판단이나 행동보다 마음과 몸이 먼저 움직이는 그들을 보면서 그녀의 순진한 듯한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짐작하게 만들면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고 간다.
다른 작품들도 가리를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 미발표 원고들이 과연 작가의 바람인지는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가 어떤 이유에선가 발표하지도 완성하지도 못한 글들을 묶어서 낸다는 것은 상업적 목적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같은 사람임을 알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