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아침 출근 시간에 뭘 읽을까 생각하다 이 책을 선택했다. 비좁은 전철 안에서 열심히 읽었다. 업무가 끝난 후 집으로 들고 가서 읽을 것인가 아니면 근처 커피숍에서 읽은 것인가 고민했다. 결국 커피숍을 선택했다. 단숨에 나머지를 읽었다. 이 소설은 그런 속도감을 준다. 한 번 쥐고 읽다보면 그 끝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와 많은 부분 닮은 일본을 통해 한국의 현실을 생각한다.
이번 소설엔 살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죽이고, 범인이 누군지 찾는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거대한 조직에 의한 살인은 늘 있다. 그 조직은 바로 일본 후생성이다.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도 말했지만 의료 현장에 무지한 관료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고급 관료 나리들을 컬트 교단 신자들과 비교하고, 자기 안의 이상향에 빠져 외부 세계에 대한 광신도적 공격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뒤에 가면 의사가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환자를 죽이면 과실치사 등으로 법적 제재를 받지만 관료가 정책 실패로 인한 법의 심판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며 불만을 토한다. 이 부분에서 일정부분 동의한다. 의사가 실수는 한두 명의 생명을 빼앗을 뿐이지만 정책의 실패는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일가족 자살 등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문에 관료가 움츠려 드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너무 이권에 휘둘리는 모습이 뻔한 경우 어느 정도는 책임을 지게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소설은 일본 의료체계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엿보면서 마무리한다. 얼음마녀인 리에의 행동과 심리를 따라가면서 산부인과에 대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녀의 전문분야는 인공수정이다. 그녀는 마리아 산부인과를 예전 의료체계가 바뀌기 전부터 다니면서 임상 경험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법이 바뀌면서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그녀가 지역병원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그렇다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몰락하는 병원에서 마지막 5명의 임산부를 돌보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처음엔 누가 죽나? 혹시 다른 미스터리가 있나?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그런 생각보다는 그가 보여주는 공간과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5명의 임산부와 리에와 기요카와의 이야기가 군더더기 없이 진행되었다. 특히 임산부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가슴속에 진한 울림을 준다. 예전에 영화로 만들어졌던 것처럼 단 몇 시간을 위해 아이를 낳겠다고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불량소녀에서 모성애를 깨닫게 되는 19세 소녀 유미의 모습은 전형적이지만 현실성 있게 다가왔다. 아마 아이의 아빠를 자처하다 기형임을 알게 되면서 도망간 남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미스터리로 분류한다면 바로 리에를 둘러싼 비밀 때문이다. 그녀를 통해 보여주는 몇 가지 행동들의 의미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인공수정과 중간 중간 현대의학에 의해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를 수 있다는 말은 마지막 장면을 위한 거대한 장치다. 다섯 명의 임산부 중 대리모가 분명한 한 여자와의 관계도 의문의 대상이다. 가볍고 빠르게 읽히면서 이런 의문들보다 나에게 더 다가온 것은 리에를 통해 작가가 의료제도를 비판한 내용들 때문이다. 너무 냉정하여 얼음마녀라고 불리던 그녀가 강한 모성에 영향을 받는 장면은 나 자신도 빠져든다.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난 것이 하나 있다. 현재 우리도 일본처럼 저출산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 인공수정에 대해 몇 백까지 보조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병원들이 이 비용 자체를 두 배로 올려 개인들의 부담을 예전과 동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일에 비해 돈이 되지 않는 출산보다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는 소식이나 과거 수익성 때문에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유도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사들의 진실성을 한국에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이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다. 그리고 현실에선 환자를 노력하는 의사가 더 많겠지만 이런 일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면서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의사들까지 욕먹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