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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우물 1 ㅣ 펭귄클래식 22
래드클리프 홀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표지가 인상적이다. 전체적인 윤곽은 펭귄 시리즈를 따라간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길 위에 흰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큰 키와 흐린 하늘과 어깨를 드러낸 그녀의 뒷모습은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1권을 모두 읽은 지금 과연 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스티븐일까? 아니면 그녀가 사랑한 여자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를 지닌 것일까? 2권까지 읽게 되면 알게 될까?
한 여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남달랐다.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를 사랑하는 것이야 아이들일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어머니 애니와의 거리감은 그 명확한 실체를 알지 못하는 두 사람에겐 이질감을 남겨두고, 평생 둘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게 만든다. 이것은 그녀의 성 정체성을 빨리 깨달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더 깊고 넓어진다.
귀족인 그녀의 부모는 아들을 원했다. 딸이 태어났다. 하지만 딸도 보통의 딸이 아니다. 딸의 몸속에 아들을 담고 있다. 잘못 들어온 그 영혼은 방황을 한다. 지금도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이 결코 좋지 않은데 19세기 말이면 어땠을까 짐작이 간다.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아버지가 그 사실을 숨긴 것도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사실을 알고도 그녀를 여자로 키우겠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도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의 성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그 시절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아니면 딸의 몸속에 깃든 아들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그는 딸에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느낀 불안감 때문에 그녀가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성장하는데 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그녀의 방황은 아프고 외롭고 깊다. 자신이 일반적인 여성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세상에 자신과도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서 그 외로움은 더 깊어진다. 이때 안젤라의 배신으로 아버지의 서재에서 깨닫게 되는 사실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처럼 보인다. 다음 권에서 분명 그녀와 비슷한 성 정체성을 가진 푸들의 도움으로 세상을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그렇게 그들에게 순순하게 문을 열어주고 관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어린 시절 그녀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다름에 대해 묻었을 때 그 해답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녀는 안젤라와의 필연적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 아니다. 아마도 좀더 자신을 가지거나 현명하게 대처했을 테지만 그 마을을 떠나지 않는 한 변화가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하느님이 표시한 카인으로 자책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 대부분의 동성애자처럼 은밀하고 자제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좀더 잘 숨기고 살지 않았을까? 이런 무의미한 가정들은 하는 이유는 그녀의 삶에서 느껴지는 고독의 깊이 때문이다. 딸의 성 정체성을 알았을 때 드러나는 부모의 각각 다른 반응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