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 아일랜드
앤 브래셰어즈 지음, 변용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다 읽은 지금 표지를 유심히 쳐다본다. 가끔 책 읽기 전과 후에 그 느낌이 너무 달라지거나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는 낯설게 느껴진다. 현실의 공간이 아닌 환상처럼 보이고, 붉은 나비들은 바다 위에 있는 각각의 남녀들을 불안하게 지켜보게 만든다. 왠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표지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이 세 명이 소설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한 남자와 두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흔한 삼각관계가 아닌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솔직하게 알게 되고, 사랑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시선은 앨리스에게 고정되는데 행동이나 대화보다 심리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 덕분인지 활기 넘치는 장면들보다 감정의 깊이나 흔들림을 다루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성장기를 함께 보내고, 너무 가까운 관계이다 보니 오히려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서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불행한 사고가 생겼을 때 마음에 깊은 상처와 죄책감을 심어준다. 이 모든 감정은 삼각형의 꼭지점에 자리한 앨리스가 가장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데 보고 있으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앨리스와 라일리는 자매다. 라일리와 폴은 동갑내기다. 폴은 앨리스가 태어났을 때부터 좋아했다. 여름 한 철을 보내는 별장들로 이루어진 파이어 아일랜드에서 만난 그들은 운명처럼 엮여진다. 라일리는 성장을 거부한 피터 팬 같다. 그녀가 느끼는 충동은 과거를 지키고, 미래를 은폐하고, 최대한 매사를 똑같이 유지하는 것으로 언제나 똑같다. 이런 그녀를 가운데 두고 서로의 감정을 숨기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두 남녀 앨리스와 폴이 불편한 상황을 연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앨리스의 경우 라일 리가 심장이 좋지 않아 긴급수송 될 당시 폴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은 죄책감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죄의식으로 바뀌는 그 순간 그 두 남녀에게 일어날 일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사랑의 감정은 미묘하다. 긴 세월을 알게 모르게 쌓아올렸지만 한 순간에 흔들려 무너지거나 잊고자 하지만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감정들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기보다는 남을 더 의식하면 더욱 힘들다. 일단 어느 정도 솔직함을 자신에게 허락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숨겨두고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솔직함을 허락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지난 여름 한 번 솔직하게 허락하였지만 그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두 사람만의 비밀이었다. 그러니 강한 바람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소설은 잘 읽힌다. 눈에 보이는 비밀도 있고, 첫 사랑을 좀더 활기차고 아름답게 꾸밀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멈춰 선 그들이 다시 자신들을 돌아보는 그 과정은 너무 앞으로 달려 나가려고만 하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의도하지 않은 불행한 사고로 인한 시작이지만 그 결과는 결코 불행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느낌은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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