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데 많은 부분 공감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 책이 서술하고 있는 방식에는 조금 불만이 있다. 저자가 지닌 매력이 글 속에 살아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끔 그가 이런 식의 책을 내놓는데 너무 평면적이고 전후 관계의 엄밀함이 부족하게 실려 있다. 한 시대나 인물을 깊이 있게 파헤친 책들에게서 받은 놀라움이 이 속엔 없다. 그래서 불만과 아쉬움이 생긴다.

 

26명의 인물을 4개의 범주로 묶어서 말하고 있다. 그 한 명 한 명이 낯익다. 학창시절 역사책에서 만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편하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너무 많은 인물들이 한 권에 실려 있다 보니 각 인물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쉽게 읽고자 하는 사람에겐 흥미로운 글이 될지 모르지만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2% 부족함을 느끼게 만들어 줄 뿐이다.

 

이번 글에서도 그는 독설을 내뿜고 있다. 서인과 노론에 대한 반감은 여전히 바닥에 깔려 전해지고 새롭게 발굴한 인물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전에 읽은 그의 책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가진 역사관의 바탕 위에서 쓴 글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십 여 쪽에 한 인물을 요약해서 표현하려니 엉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물들을 하나의 꼭지로 묶어 일관성 있는 글을 썼다고 하지만 한 인물을 파헤친 그의 역작들을 읽은 나에겐 너무나도 부족하게 느껴질 뿐이다. 나쁘게 표현하면 너무 대중적인 글쓰기로 장점이 묻힌 것이다.

 

그에 대한 애정 때문에 상당히 부정적으로 평가하였지만 아직도 그의 신간이 나오면 눈길이 저절로 간다. 아직 그의 모든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신랄하면서도 치밀하고 전후의 연관성을 대범하게 추리하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들에 푹 빠졌다. 김종서, 이회영, 송시열, 사도세자 등의 인물에 대한 저서들은 한 번 잡고는 손에서 떼기가 어려울 정도로 몰입했고, 그 어떤 소설보다 흥미진진했다. 그의 장기를 그대로 드러낸 책들인데 이상하게 인물들 모음으로 책이 꾸려지면 너무 평범하게 변하면서 지루해진다. 아마도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 인물전에 비해 이런 인물들을 모은 책이 단편적인 사실과 다양한 인물들 이야기 때문에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논조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인물이 몇 있다. 대표적으로 정도전과 이징옥이다. 정도전이 북벌에 많은 공을 들인 것처럼 표현한 것이 유학자인 그의 이력과 업적을 생각하면 잘 맞지 않은 것 같다. 이징옥은 김종서 평전에서 결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새롭게 조명 받는 것을 보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 놀랍게 생각되는 인물이 있다. 심산 김창숙이다. 비교적 최근의 인물이기에 약간 어리둥절하다. 그는 책 속에서 최치원과 천추태후처럼 조선시대 인물이 아닌 세 사람 중 한 명인데 어떤 의도에서 이 세 인물들이 선택된 것인지 의아하다. 조선시대 인물 중심에서 그 인물들만 선택한 이유가 너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최치원의 유명세에 비하면 천추태후나 김창숙의 지명도가 많이 떨어지는데 이것은 이 책의 편집 방향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완성도와 재미가 떨어진다. 역사서에 재미를 찾는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할지 모른다. 오락적 재미가 아닌 글 속에 숨겨진 이면을 찾아 새롭게 해석하고 분석하면서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재미를 말한다. 인물에 대한 단편적 이야기에서 그런 재미를 찾기는 분명 쉽지 않다. 그 인물의 특징만 추려서 나열하다 보니 전체적인 인상이 몇 가지 사실에 의해 만들어진다. 기존 역사서의 나열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물론 새로운 시각에서 인물을 평가했다. 그러나 그 평가는 주관적으로 보인다. 자료가 책 속에 충분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다른 책에서 자료와 자료 사이를 시대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분석으로 멋지게 그려낸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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