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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
카트린 본가르트 지음, 조국현 옮김 / 아일랜드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라디오는 참 매력적인 물건이다. 지금은 예전처럼 잘 듣지 않지만 운전할 때면 가끔 듣게 된다. 어떨 때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취하고, 어느 순간은 라디오 DJ의 말 한마디에 웃음과 즐거움을 느낀다. 아주 가끔은 라디오 때문에 사고도 날 뻔 했으니 그 매력은 정말 대단하다. 지금도 주변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것을 보면 그 영향력이나 매력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변한 것은 나다.
소설 속 주인공인 16살 로코는 낯선 베를린으로 이사 온다. 새 학교에서 첫날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얼마 전까지 사귀었던 여자친구는 자신의 친구와 사귄다고 결별 편지를 보낸다. 이별과 새로운 환경 적응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우연히 한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일상이 괴롭고 힘들던 그에게 이 라디오 방송 프리 스테이션은 변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 변화는 우연히 찾아왔지만 조금씩 변하면서 그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이 소설 속 로코는 우리의 정서로는 아직 어리다. 물론 독일에서도 학생이고 성인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술과 담배와 섹스를 사실대로 그려낸다. 문화 차이가 드러난다. 책을 읽다 순간적으로 로코의 나이를 잊게 되는 순간도 많다. 술은 마시고, 섹스를 하고, 20대와 어울려 놀면서 방송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 부분은 외국소설을 읽으면서 그 나라와 우리의 문화와 생각의 차이를 보면서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낯선 문화와 풍경 속에서 우리의 문화와 생각을 계속 비교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재미있다. 잘 읽힌다.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내는데 그 단계를 급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그 속에 갈등과 고민과 사랑 등을 집어넣어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을 괴롭히는 동급생에겐 아직도 힘에서 딸리고, 방송국을 배회하는 불량배에게 달려들지만 한방에 무너진다. 연상의 라모나에서 연정을 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새롭게 마음으로 다가온 미카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랑싸움도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형은 마약 중독으로 힘겨워한다. 불안하고 무섭다. 이런 와중에 그는 조금씩 성장한다. 외적 성장이 아닌 내면의 성숙이다. 아직도 십대의 유치함을 간직하지만 좀더 용기를 가지게 되고, 자신에게 솔직하게 된다.
화려하지도 속도감 있는 모습으로 독자를 사로잡지 않지만 탄탄한 구성과 전개는 매력적이다. 프리 스테이션 동료들의 강한 개성은 약간은 밋밋할 수 있는 내용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로코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여인 라모나와 미카는 각각 다른 매력을 품어내면서 주인공을 흔든다. 정신적 지주인 존은 불행한 가정사에서도 강한 버팀목이다. 친구이자 연적인 버트는 둘 사이에 알콩달콩한 질투를 만들며 살며시 미소 짓게 한다.
어른들은 큰 역할이 없다. 문제가 생겨도 그들이 고민하고 푼다. 로코의 부모들은 불안하지만 자식들을 믿는다. 무관심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때문에 로코는 더욱 성장한다. 물론 부모는 로코의 든든한 방어막이다. 다만 강한 사람을 부르짖는 바람에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낼 수 없다 뿐이다. 이 소설이 어른들을 다룬 소설이 아닌 십대의 한 소년을 다룬 성장 소설임을 보여준다. 극적 장치도 멋진 장면도 거의 없지만 담담하면서 꾸준하고 현실적으로 가슴에 스며든다. 가능성은 변화 속에서 드러난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인식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