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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팬더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 / 끌림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미식가, 그들은 어쩌면 축복보다 저주 받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나같이 둔한 사람은 맛없는 음식도 그냥 가볍게 먹을 수 있지만 그들은 분명히 엄청난 고역일 것이다. 맛있는 것, 더 맛있는 것을 추구하는 과정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추구하는 열정과 노력이다. 하지만 그 광기에 빠져들게 되면 목적을 위해 어떠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바로 거기서 비극은 탄생한다. 그리고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살인도.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같은 가격이면 맛있는 집을 찾아가는 것이 보통의 발걸음이다. 좋은 재료로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은 실력 있는 요리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보통의 재료에서 제대로 된 맛을 이끌어내는 것은 대단한 실력이 필요하다. 이 소설 속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두 사람 중 한 명인 프랑스 요리인 코타가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다. 일류 레스토랑에서 실력을 닦은 다음 자신만의 식당을 열어 매일 바뀌는 메뉴를 제공한다. 뛰어난 요리 실력에 미각도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엔 최고의 재료로 환상적인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와 엄청난 미각을 가진 미식가가 나온다.
미식가 나카지마 옹은 정말 대단한 미각과 후각을 가지고 있다. 그를 만족시킬 요리사는 많을지 모르지만 감동시킬 요리사는 거의 없다. 여기에 늘 그를 감동시키는 천재 요리사가 등장한다. 그에 대한 설명을 보다 보면 인간의 감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카지마 옹이 이시구니와 함께 코타의 식당 ‘비스트로 코타’에서 미식가와 팬더의 육식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정보와 더불어 앞으로 펼쳐질 사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조금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아니면 이와 비슷한 광기에 휩싸인 사람이 나오는 책을 본 사람이라면 끔찍한 예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또 다른 축인 형사 아오야마는 이 소설이 미스터리임을 알려준다. 만약 그가 없다면 아마 그냥 끔찍한 소재를 다룬 소설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다른 수많은 경찰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윗사람이 시키는 일만 하지는 않는다. 수사본부의 방향 설정이 잘못되었을 때 그 틀을 벗어나 자신이 세운 추리에 따라 움직이고, 하나씩 단서를 모은다. 경찰을 모습과 권력을 가진 탐정역이다. 아오야마가 있어 살인사건에 대한 단서들이 하나씩 모이고, 그 단서들은 독자들에게 추리를 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잘 만들어지고 구성된 추리소설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편하고 빠르게 읽히면서 재미있고 불편할 뿐이다.
사실 책 뒷면에 소개된 냉장고 속 끔찍한 재료는 나에게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는다. 다른 소설에서 다루어졌고, 그 요리법을 다룬 책이 있다는 사실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끔찍하게 느껴진 것은 그 재료가 아닌 그 재료를 마련한 인간들의 생각과 행동 때문이다. 맛의 끝을 추구하기 위해 벌이는 과정이 너무 비인간적이고 놀랍다. 바로 이 때문에 앞에서 미식가는 저주 받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인간이 가진 가장 강한 욕망 셋 중 하나인 이것을 충족하기 위해 벌인 그 일들이 이성을 넘어 욕망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책 전반부와 중반에 멋진 요리에 대한 묘사로 입안에 침이 고이게 만들었는데 후반에 벌어진 끔찍한 사실은 순식간에 미각을 잃게 만들 정도다.
표지의 이미지에 속지 말아야 한다. 대나무를 먹는 팬더와 그 팬더에 양념을 치는 요리사의 모습은 약간 코믹한 느낌을 준다. 미식 미스터리는 맛있는 음식들과 그것을 둘러싼 사건을 예상하게 한다. 요리사와 평론가라는 두 존재가 등장하면서 갈등과 긴장감을 고조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분명 최고의 요리사와 평론가가 나오지만 그들이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탐정은 아니다. 이 역할은 형사 아오야마다. 다만 그들은 사건의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약간은 밋밋한 살인사건에 풍부한 이야기와 상상력을 덧붙여 준다. 그 살인사건 이면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사건이 숨겨져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