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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한 남녀가 체실 비치에 신혼여행을 와 겪게 되는 첫날 밤 이야기다. 사랑과 낭만으로 가득해야할 첫날밤이 그들에겐 이별의 순간이다. 이 순간을 그려내는 작가의 필력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두 남녀의 감정과 심리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면서 그들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헤어져야 하고 남은 삶의 긴 시간 동안 그 순간을 돌아보고 의문을 가져야 했을까?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반응이 다른 것을 보면서 사랑이 얼마나 오묘한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한다.
20대 초반의 두 남녀는 교육을 잘 받았고 순결을 유지한 채 결혼했다. 그 시절엔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고 한다. 한 해 동안 그들은 많은 스킨십을 가지고 사랑을 키웠다. 남자는 늘 성적 욕망으로 가득 찼지만 절제를 하였고, 여자는 남자의 스킨십이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첫날밤. 얼마나 설레는 시간인가? 남자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침대로 가고 싶다. 여자는 그의 깊은 키스나 손길에 거부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과 행동은 생각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첫 번이라는 것에 그들은 걱정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미숙한 행동과 감정의 폭발은 파국을 불러온다.
삶에서 사랑과 선택의 순간은 늘 있다. 그 순간을 되돌아보면 언제나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현실에 아픔이나 어려움이 있을 경우 더 자주 그런 생각이 난다. 작가는 바로 이 순간에 눈길을 돌렸고 멋지게 풀어내었다. 단순히 하룻밤의 이야기라면 더 간결하게 그려낼 수 있었지만 두 남녀가 살아온 삶의 길과 생각들을 그 속에 담아내면서 단순히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그 시대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욕망으로 가득하지만 시대의 분위기에 의해 억압되었던 그 시간들. 에드워드가 플로렌스에게 청혼을 했던 그 순간도 사랑 그 이상의 욕망이 충동적으로 작용했다. 그 충동은 그들의 이별에도 이어지니 젊은 시절 혈기와 열정은 무서울 정도로 대단하다.
그들이 왜 헤어졌을까?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이 너무 예의 바르고, 너무 경직되고, 너무 소심하고,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사교적인 배려로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려서 눈을 멀게 했다고. 이것은 그 당시 팽배한 사회 분위기다.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두 사람의 미래를 한 순간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날려버린다. 물론 그들의 삶이 여기서 멈추지는 않는다. 또 다른 기회와 사랑이 다가온다. 그러나 그 순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의 한 칸에 자리를 잡고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리움과 아쉬움을 가지고.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놀란다. 언제나 사랑을 다루는데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반하고, 삶과 사랑을 풀어서 펼쳐 보여주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감정을 세밀하고 그려내고, 관계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미세한 감정들은 보면서 감탄하게 만든다. 외국 두 남녀의 하룻밤 이야기에서 나 자신의 수많은 미숙한 행동과 그 때문에 생긴 그리움과 아쉬움이 점점이 묻어난다. 그들의 이야기가 나의 기억에 불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