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더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4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4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자신의 눈앞에 자신이 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면 어떤 기분일까? 이 소설의 시작은 이렇게 문을 연다. 의학학회차 파리로 갔다 돌아온 법의관 마우라가 자신의 집 앞에서 마주한 사실이다. 그녀와 너무나도 닮은 시체를 발견한 그녀의 동료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그녀를 보고 놀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와 닮은 그녀는 누구고, 그녀는 왜 살해당한 것일까? 그리고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렇게 많은 의문을 제공하면서 멋지게 출발한다.

 

책 소개에 그녀의 정체가 나온다. DNA 검사 결과 쌍둥이 자매다. 여기서부터 나의 추리와 상상력은 힘차게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혹시 유전자 복제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아니다. 혹시 그녀의 정체가 증인보호 프로그램 중에 있는 사람은 아닐까? 아니다. 그럼 왜 그녀는 죽었을까? 누가 죽였을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시작한 이야기는 다른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시발점에 불과하다. 그것은 아이를 수확하는 최악의 악당을 보여주기 위한 사전 작업에 불과하다.

 

의사 시리즈 중 첫 권인 ‘외과의사’만 읽었다.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할리우드 영화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 여주인공 리졸리의 연약한 듯 강인한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이 소설에선 강인함만 가득하다. 자신의 출생을 둘러싸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마우라 박사가 오히려 연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출생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이 그녀의 용기를 조금씩 잠식한다. 하지만 이 두 여인들 내면은 아직도 강하다. 그 강함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사실을 직시하고 해쳐나가는 용기를 말한다. 이런 여주인공과 달리 매우 심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납치된 임산부 매티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는 말처럼 아주 강하다. 이야기 중간에 갑자기 납치된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굉장히 인상 깊다.

 

마우라 박사의 자매 애너의 죽음에서 시작한 과거의 흔적과 새로운 살인사건은 작가의 놀라운 시선 유도에 빠져들게 한다. 범인에 대해 몇 번이나 추리하고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마지막 장면은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공정한 독자와의 경쟁이냐 하고 묻는다면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고? 그것은 이 소설이 주는 재미가 범인을 맞추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범죄 유형과 마우라 박사의 과거와 현재가 계속해서 의문을 주고 긴장감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또 그녀의 사랑에 대한 갈등은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가 움직인 곳에서 발견된 살인의 흔적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희생자들의 사라진 흔적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형사 리졸리가 그 흔적들을 가지고 추리한 내용은 지금까지 본 추리소설 악당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잔혹하고 나쁜 놈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사건을 만들고 풀어내는 능력은 역시 대단하다. 매력적인 두 여주인공을 배치한 후 새로운 멋진 여성을 등장시킨 일이나 하나씩 사실이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사실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여주인공들이 나오다보니 남성 사회에서 그녀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알게 되고, 사랑이란 이름 속에 담긴 강한 소유욕이 어떤 불행을 불러오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 중 최악 중 하나를 만나면서 느끼는 감정은 착잡하고 가슴 아프다.

 

보통 시리즈의 경우 첫 권부터 보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모르고 중간부터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너무 평이 좋아 그냥 최근작을 보았다. 주인공이 이어서 나오지만 사건 자체가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리졸리와 마우라 박사의 과거를 둘러보고 싶다. 거칠고 배타적인 남성 사회에서 두 여주인공이 어려움을 헤치고 사건을 해결한 장면들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게 되면서 순서대로 봐야지 하는 장벽이 사라짐으로써 사놓은 지 좀 된 ‘파견의사’를 부담 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두고 일거양득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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