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 Miracle 1
강지영 외 지음, 김봉석 엮음 / 시작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기대 이상이다. 사실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단편 추리소설들에게 많은 실망을 한 경험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멋진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엮은이가 지적한 할리우드적 기반은 약간 아쉬움으로 남지만 많지 않은 한국 스릴러 작가와 작품을 생각하면 상당히 고무적이다.

 

8편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인간실격’부터 강한 인상을 준다. 인간을 먹는 괴물과 처절하게 싸우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괴물과 싸우며 그 자신도 괴물로 변한 남자의 모습은 처절하고 잔혹한 싸움 장면과 비현실적 존재가 잘 어우러진 소설이다. 물론 장편으로 개작하여도 충분히 재미난 소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왼손’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손 이야기다. 이 소설을 보면서 예전에 본 공포 영화가 떠올랐다. 정확한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저주 받은 손에 대한 것이다. 물론 이 소설과 다른 이야기지만 이성의 의지를 배반하고 멋대로 움직이는 손의 행동은 그 영화 속 손과 너무 유사하다. 잔혹하고 예상되는 진행은 긴장감을 조금씩 감소시킨다.

 

‘피해의 방정식’은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다. 그 참혹했던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분열된 심리를 다루고 있다. 그때의 광주를 배경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지만 스릴러 장르에서 충분히 깊이 있는 이야기가 다루어진 것을 본 기억은 없다. 이 소설도 그렇다. 비극의 현장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호러나 스릴러로 그 시절 광주의 비극을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질주’는 좋은 소재를 다루었다. 인간의 욕망을 돈과 삶이란 두 축으로 진행한다. 왜? 라는 이유는 없다. 도박으로 상황이 만들어지고 주인공은 쫓기고 도망 다닌다. 쫓는 자는 잡아서 돈을 얻고자 하고, 도망자와 그를 보호하여 돈을 벌려는 두 축의 이야기가 긴장감을 불러와야 하는데 조금 힘이 딸린다.

 

‘주말여행’은 결말이 보인다. 구성과 진행이 너무 낯익다. 죽이고자 하는 사람과 죽는 이가 뒤바뀐 상황에서 벌어지는 마지막이 긴장감을 불러와야 하는데 조금 약하다. ‘액귀’는 귀신을 다루고 있는데 다른 소설들에서 너무 많이 접한 내용이다. 묘사와 진행이 긴장감을 주기보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더 많이 주어 약간 산만하게 다가온다.

 

가장 매력적인 두 캐릭터가 나오는 ‘사냥꾼은 밤에 눈뜬다’와 ‘세상에 쉬운 돈벌이는 없다’는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인간실격’의 주인공이 장편으로 한 번에 끝날 이야기라면 이 소설에 나오는 두 주인공은 연작으로 나와도 충분히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냥꾼’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이 살육의 현장에서 싸우는 장면을 다루고 있고, ‘세상에’는 해결사와 스토커의 대결이 재빠르면서 속도감 있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선에서 유일하게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사냥꾼’의 살육현장은 처참하다. 부유층이 한 번의 오락을 위해 사람을 잡아놓고 사냥하는 현장에서 무통증 주인공이 보여주는 활약은 반영웅의 등장처럼 느껴진다. 그의 이 특별한 능력 또는 저주와 잃어버린 기억들과 약점을 더 다룬다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세상에’의 해결사 주인공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그 규모를 조금씩 키워나가도 충분히 통할 것 같다. 전직 형사 출신인 경비원 아저씨와 연결시켜 새로운 임무를 만들어내고 밝은 분위기를 좀더 부각시키면 멋진 연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간 아쉬운 점을 많이 쓴 듯하다. 기대 이상의 재미가 있었지만 해외 걸작에 비하면 아직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성과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시선을 끈다. 한때의 바람이 아니라 꾸준히 이런 작품들이 나온다면 우리도 분명히 해외 걸작에 버금가는 멋진 작품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하게 만든다. 최근에 읽은 한국 장르문학 단편선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몇 권 있지도 않고, 몇 권 읽지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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