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벨카, 짖지 않는가 ㅣ 미스터리 박스 2
후루카와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특이한 형식과 재미난 구성이 갖추어진 소설이다. 개들의 역사를 통해 현대사를 보여주고, 인간들을 통해 현재를 말한다. 인간의 수명과 개의 수명을 비교해도 인간의 몇 분의 1 밖에 살지 못하는 개들이 전체를 아우르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개들의 족보와 역사를 현대사와 함께 풀어내면서 당당히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 책이 주는 특이한 재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네 마리의 개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미군을 따라 이들은 옮겨지고, 분양되면서 각각의 삶을 산다. 그 삶을 보면 인간의 충실한 동반자 모습과 야생의 삶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교배하고, 분양되고, 도망 다니고, 양육되면서 그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죽고 자라고 또 살아남는다. 이 과정을 단순히 개들만 비춰주었다면 조금 지루했을 것이다. 여기에 세계사의 한 장면들을 이어가면서 긴장감을 높여주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국제정세를 개의 삶과 연결시켜 연속성을 부여했다. 그 과정의 끝은 현재의 삶과 결국 만나게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군견부대다. 전쟁사나 다른 역사에서 군견부대가 있었다는 것 정도는 들었지만 그들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몇몇 품종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품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었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그런 인위적인 교배는 없다. 먼 태고부터 내려온 본능과 노력으로 점점 더 발전한 것이다. 개가 독학으로 마약을 구분하는 장면 등에 이르면 인간과 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구별하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혼자 사유하고 노력하는 모습 때문이다.
개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페레스토로이카 이후 혼란스러운 소련을 배경으로 피와 살이 튀고, 죽음과 잔혹함이 가득한 세계를 만들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벨카로 불리는 수컷과 그를 키우고 있는 대주교로 불리는 노인이다. 그들의 능력은 대단하다. 철저하게 무장한 마피아를 주저 없이 공격하여 죽음으로 내몬다. 벨카를 필두로 한 군견부대는 잘 훈련되어 시가전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사람들이 개를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좋아하는 허점이 그 위력을 더욱 배가시킨다. 불을 지른 현장에서 집개처럼 조용히 있는 모습을 연출하는 장면은 인간의 상식을 비웃는 멋진 작전이다. 그 외 애완견이나 떠돌이 개처럼 행동하는 장면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어떨까하고 놀라게 된다.
개들의 역사에서 한 획을 끗는 중요한 한 마리가 있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에 나간 라이카다.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우주로 나간 그 개는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다. 실제 그 개의 후손이 활약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멋진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인공위성을 타고 지구 계도를 도는 순간 그의 동료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수많은 개들은 그 위대함과 새로운 개의 기원에 눈을 뜨게 된다. KGB 군견부대의 상징이자 맹세의 대상이 라이카의 두개골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한 개의 기원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무참히 학살되지만 암암히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혹시 다음에 그 맥을 이은 개들이 나와서 다시 한 번 더 멋진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