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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책마을이란 단어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책마을 행사를 보여주면 내 눈이 반짝반짝 빛나곤 했다. 그들의 언어를 전혀 모르고 실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설렘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책이란 것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유럽 책마을 24곳을 보여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평생 가보지 못할지 모르지만.
책마을이란 단어는 한 마을 전체가 전부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예상외로 이곳들의 모습은 단출하다. 예상보다 적은 서점들이 책마을을 이루고 있다. 불과 2-30곳 정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마을에 상주하는 인구를 생각하면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 그리고 각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고,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다. 한창 성장하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조금씩 세가 기우는 마을도 있다. 정부나 시 등에서 지원을 받아 잘 운영되는 마을도 있는 반면 자력으로 힘겹게 성장하는 마을도 있어 무척 대조적이다. 또 책마을로 지정되어 실패한 마을도 있다고 하니 이 책에 실린 마을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하다.
책하면 두 곳이 먼저 떠오른다. 하나은 크고 작은 주변의 서점이고, 다른 하나는 헌책방이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변함없이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근처 서점에서 보자고 많이 말한다. 이런 만남의 장소가 지금은 대부분 대형서점이지만 서로가 지루하게 기다리는 순간을 피하는데 이보다 좋은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신간에 대한 정보와 수많은 책들은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동시에 읽고 싶은 욕구를 마구 자극한다. 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친구나 연인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을 볼 때면 온라인 시절에도 이 서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게 된다.
헌책방은 한때 나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곳이었다. 지금도 가끔 헌책방을 찾지만 예전처럼 자주 가지는 못한다. 일상에 지친 몸을 이끌고 헌책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예상외로 가벼웠다. 청계천이나 황학동에서 예상하지 못한 책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편하게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보다 몇 배의 기쁨을 주었다. 그때 모은 절판책들이 다시 출간되는 요즘을 보면 왠지 모르게 즐겁고 뿌듯하다. 이런 와중에 파주에 생긴 출판도시는 나의 환상을 자극하였다. 몇 번을 다녀왔지만 이곳은 특이하고 예쁜 건물이 있는 곳 이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행사 때나 기분 전환 등을 목적으로 일 년에 두세 번 찾아가지만 저자가 지적하듯이 책마을이 아닌 출판사 마을이었다. 이젠 혹시 하는 기분에 찾아가서 역시 하는 기분을 가지고 오는 곳이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이곳을 추천하는 나 자신을 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닌 듯하다.
저자는 유럽 책마을 다니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 마을뿐만 아니라 책에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를 말한다. 특히 북한에서 조선의 뛰어난 문화유산을 해외에 알리고자 6.25 전쟁 직후 펴낸 화보집 내용이 일제 총독부에서 조사하고 촬영하고 제작한 도판을 거의 복제해 수록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부조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 벨기에 플랑드르에서 경찰 둘이서 초라한 동남아 사내를 난폭한 몸짓으로 몰아세우고 두들기는 광경은 그 나라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기차역이 깨끗해졌다고 좋아라 하는 여론이 있다. 인권보다 위생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라 말하며 콩고에서 학살을 자행한 것보다 멸종 위기에 처한 유인원을 애틋하게 그린 이미지로 희석시켰다는 지적은 가슴에 쿵하고 와 닿는다. 인간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이기적인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서점이나 헌책방 이미지 때문인지 모르지만 유럽 책마을의 서점들은 조금 낯설다. 밖으로 보아서는 그냥 일반 주택처럼 보이는 곳이 대부분이다. 사진을 그런 곳만 찍어서 그런지 아니면 주택을 개량한 서점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상당히 특색 있다. 잘 찍힌 사진과 저자의 설명은 그곳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데 대체로 교통편이 불편하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기세가 꺽인다. 또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은 아직도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이 남았음을 알게 하고, 나의 가슴 속에 깊숙이 봉인했던 서점에 대한 열망을 북돋아준다. 책 향기 가득하고 책으로 가득한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