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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2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한때 추리소설 작가들은 동서냉전이 깨어지면서 스파이소설에 대해 쓸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탁월한 수많은 작가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면서 독자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9.11 이후 새로운 적이 등장하면서 소재에 대한 걱정이 사라진 것 같다. 과격한 이슬람 집단과의 대결은 새로운 긴장감과 공포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독자들을 빨아 당긴다. 그 연장선에서 거장 프레더릭 포사이스가 한 편의 멋진 스파이소설을 내놓았다.
포사이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가 창조한 세계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숨겨져 있다. 그 속에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들은 일상의 삶에선 결코 느낄 수 없다.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와 그것을 깨트리려는 정부 조직 간의 대결은 세밀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고, 그 속에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은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새로운 사실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최첨단 기계를 이용한 추적과 각 지역의 특징을 묘사하며 풀어내는 이야기는 한 번 빠지면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우린 불안한 세계에 살고 있을까? 이런 상상에 잠시 잠기기도 한다.
이 소설에 주인공은 아프간으로 변장하여 적진으로 들어간 마이크 마틴이다. 하지만 다른 스파이소설과 달리 직접적으로 강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007 같은 주인공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지루하고 따분하지만 늘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스파이 역할이다. 그 스파이 역할도 활동적이지 않다. 작가는 앞부분의 대부분을 상황 설정과 마이크와 아프간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 채운다. 이런 기초 작업을 통해 앞으로 벌어진 사건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그리고 왜 그가 알 카에다 조직에 잠입해야 하며, 그가 아니면 불가능한지 독자에게 주지시켜준다.
주인공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강한 액션이나 예상하지 못한 반전 등으로 즐거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보다 상황에 더 집중한다. 주인공이 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조용히 스며들고 흘러간다. 그런데 이 상황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마이크는 조용히 움직이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은 급속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의 정보기관은 그를 따라 움직이며 정보를 수집하고, 그가 남긴 단서로 전 세계를 휘저으며 음모를 분쇄하려고 한다. 우연히 알게 된 정보를 단서로 이루어진 이 거대하고 긴 계획이 눈에 보이지 않는 치밀하고 무서운 대결로 끝없이 이어진다. 마이크를 둘러싼 모습은 오리의 수영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고요함 밑에 숨겨진 숨 바쁘고 활기찬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고요함은 태풍의 눈과 같다. 언제 그 엄청나고 거대한 힘을 폭발시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풍부한 정보가 가득 들어있다. 이 정보들은 읽을 때면 언제나 감탄하게 만든다. 그 이후 테크노 스릴러의 거장이 된 톰 클랜시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난 한두 가지는 톰 클랜시의 소설과 미국 드라마 24다. 물론 24와 톰 클랜시의 소설은 다르게 진행된다. 하지만 현대 과학 기술을 이렇게 멋지고 환상적으로 이야기 속에 녹여낸 작가는 흔하지 않다. 그런데 포사이스는 여기에 풍부한 외국 정보와 음모와 긴장감 있고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을 연출하여 그들과는 다른 재미를 준다. 스파이소설을 제대로 알기 전에도 열심히 찾아 읽었던 몇 되지 않는 작가 중 한 명인 그의 소설은 언제나 기대하게 만들고 즐거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