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카지노 로얄
이언 플레밍 지음, 강미경 엮음 / 느낌이있는책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현재 21편까지 나온 007 시리즈 중 한 편이라도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하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시리즈도 없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 영화 시리즈의 원작 소설을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 의문에 대한 답으로 등장한 이 소설은 나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다. 아주 오래전 번역이 된 적이 있지만 절판 된지 수 십 년이다. 얼마 전 시리즈 21번째인 ‘카지노 로얄’에 힘입어 번역 출간된 이 소설도 어느 순간 조용히 묻혔다.

 

어린 시절 007은 너무나도 멋졌다. 최신무기와 여성을 사로잡는 매력에 지구를 구하는 영웅으로 나를 완전히 매혹시켰다. 스파이 영화하면 가장 먼저 007을 떠올릴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인지 쉽게 알 것이다. 그리고 자랄 당시 007은 로저 무어였고, 지금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007 역할은 로저 무어다. 헌데 놀라운 것은 이언 플레밍이 시리즈 첫 편에 로저 무어를 007 역으로 강력하게 추천하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살아생전 그는 로저 무어가 007 역을 맡은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숀 코네리가 멋지게 이 시리즈를 이끌었으니 다행이다.

 

이 소설 속에서 만난 007는 이전에 영화 속에서 본 제임스 본드가 아니다. 위기에 강하고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007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거의 없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사실적인 부분이지만 긴장감이나 흥미를 생각한다면 영화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만의 재미를 보여준다. 그것은 007의 내면 묘사에 있다. 영상으로 잡아내기 힘든 내면을 작가는 섬세하게 그려낸다. 냉정하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살인을 하는 그가 한 여자에게 매혹되어 실수를 저지른다. 영화에서라면 낭만적으로 대처하고 위기를 넘어가겠지만 여기에선 그런 낭만이 없다. 아차 하는 순간 적에게 당한다. 영화 속 이미지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낯선 모습이다.

 

시리즈 소설의 첫 권이다. 이 소설로 우리가 사랑하는 007 제임스 본드가 만들어졌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이미 살인면허라는 영화가 나왔지만 007의 00이 살인면허를 뜻한다거나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그가 세심하고 철두철미하게 대비를 하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은 영화 속에선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대목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느끼는 긴장감을 즐기거나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과감하게 자신을 포기할 생각을 하는 모습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아마도 시리즈 첫 권이기에 인간적 면모가 더 많이 담겨있는 듯하다. 또 왜 이후 시리즈에서 그가 여성에게 쉽게 빠져들지 않는지, 늘 경계를 하게 되는지도 알 수 있다.

 

21번째 007 영화 ‘카지노 로얄’을 아직 보지 않았다. 긴 세월이 지난 지금 과연 어떻게 원작을 현대적으로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원작과 비슷하게 만들었다면 아마 조금 지루할 것이다. 그러니 많은 부분 새로운 장면과 상황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특히 스메르시의 놀라운 역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와 그 동안 변한 국제정세에 맞추어 변했을 악역의 역할도 기대된다. 또 이 책의 구성을 하나 말하고 싶다. 책 중간 중간에 주석으로 넣은 높은 사진은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상황에서 많은 도움을 준다.

 

비록 현대 추리소설과 같은 긴장감이나 놀라운 반전을 불러오지는 못하지만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한 명인 007의 처음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과연 이 시리즈의 다른 권들이 번역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며 이 한 권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앞으로 나올 영화 시리즈가 과연 원작에 얼마나 충실한지도 판단하는데 좋은 잣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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