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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역사 속 인물들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현실의 모습보다 비추어진 이미지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퇴계 이황도 나에겐 그런 인물이다. 퇴계를 이야기하면 항상 율곡을 생각하게 되고, 율곡을 이야기하면 퇴계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학교 교육에서 이 둘을 동시에 배운 덕분이다. 이런 연상은 그 인물을 정확히 바라보는데 방해되는 경우가 많다.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위인들을 배우다 보니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 인물을 제대로 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가끔 위인전이나 전기 등을 통해 그 인물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사실 이때는 작가의 시각에 따라 인물이 재해석되고 꾸며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처럼 편지만으로 구성된 경우는 그런 경향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퇴계의 삶을 보고 배우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조선 중기 성리학 대가라는 명성을 벗어나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직위에 놓인 그를 만나게 된다. 비록 그 과정에서 예상한 모습과 너무 달라 약간 실망도 하지만 그 또한 한 가족의 일원임을 깨닫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다.
편지만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다 보니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특별한 논쟁이나 사안이 있어 흥밋거리를 만들지도 않고, 그 시대를 대표할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도 않다. 다만 아버지로써 아들에게 편지를 써 자신과 가족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 대부분이 어쩌면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늘 하시던 잔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공부하라는 대목에선 더욱 그렇다.
유학자이자 관료였던 그가 떨어져 사는 자신의 아들에게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요즘 같다면 전화로 간단히 해결되지만 그 시대는 유일한 통신수단이 사람의 입을 통하거나 편지뿐이었다. 그러니 편지 내용이 간단한 건강에 대한 안부나 지난 일에 대한 물음과 생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정보들이 사소한 듯 보이는데 그 시대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좋은 정보가 아닐까 생각한다. 흉년으로 고생하는 백성과 왜구의 침입이나 과거제도의 변경 등 그냥 지나치기엔 민감한 정보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의 아들과 가족에 대한 정보와 애정이 넘쳐나 인간 퇴계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된다.
툭 까놓고 이야기해서 조금 지루하다. 안부인사와 모르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반복되는 독서에 열중하라는 조언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독서에 대한 그의 조언은 나에게 아픈 곳을 콕 찌른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욕심만 가득한 나를 보기 때문이다. 관료로써 그가 아들에게 공부를 하여 관리로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 넘쳐나는데 그 아들은 관심이 없는 듯하여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긴 시간을 다루고 있고 퇴계 자신이 병으로 고생했다는 사실은 새롭게 느껴진다. 그 때문에 많은 가족 제사나 상등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이 보이고, 관직에 있지만 풍족하지 못함을 알게 된다. 또 얼마나 관직을 떠나고 싶은지 보여주는 대목에선 번잡함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성공보다 한직에서 학문을 더 연마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대목도 있다. 아버지로써는 당연할 수 있지만 그의 명성을 생각하면 아쉽다. 그것은 관직에 나간 아들이 왜구가 출몰하는 지역으로 인사이동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글이다. 가끔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인사 청탁에 대한 글들이 보이는데 그가 성인이 아님을 알지만 기존 이미지에 비추어보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덕분에 인간 퇴계 이황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