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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공선옥은 내가 즐겨 읽는 작가는 아니다. 그녀의 글은 투박하다. 매끄럽게 읽히지 않으니 다른 작가들에게 우선순위가 자꾸 밀린다. 그렇다고 무시할 작가는 아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녀의 글을 읽고, 도시의 세련됨을 넘어선 향수를 느끼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런 그녀이기에 음식에 대한 산문집을 썼다기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이 산문집은 추억과 기억과 향수를 느끼게 하는 힘을 보여준다.
그녀가 말하는 음식들을 보고 생각하면서 단숨에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많지 않은 분량에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라 쉽게 생각했는데 불쑥 불쑥 떠오르는 기억과 추억들이 빠르게 나아가는 것을 가로 막았다. 그녀와 나의 세대가 다르고, 산 장소도 시골과 도시로 다르지만 많은 음식에서 공유하는 기억들이 있다. 어린 시절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경험했던 조그마한 일들이나 그 시절 귀했던 음식들과 집을 떠나와 살면서 점점 먹기 힘들어지는 음식들은 아련한 추억과 즐거움을 준다.
가장 맛있게 먹은 쌀밥이 지금도 생각나고, 고구마와 감자를 쪄서 먹든 그 시절과 제철 나물로 국을 끓여먹던 그 시간들이 불과 십 수 년이 지났을 뿐인데 아주 먼 옛일처럼 느껴진다. 음식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과 기억들은 나의 기억과 맞물려 돌아가고, 글을 읽다가 침을 꼴딱 삼키기도 한다. 그 당시 맛있게 먹던 음식이 이젠 별로인 것도 있고, 그때 지겹고 맛없던 음식이 지금은 무지 그립기도 하다. 가끔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주변에서 해 줄 사람이 없거나 그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경우는 괜히 그 음식에 대한 추억만 깨어진다. 하나의 음식을 두고 각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라 헷갈리기도 한다. 그래도 그 음식을 보면 추억과 즐거움과 반가움이 소록소록 솟아난다.
이 산문집에 실린 음식들은 가난하고 먹는 것이 귀하던 시절의 먹을거리다. 그 당시는 먹을 것이 없어 먹던 것이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별미로 자리 잡은 것도 있고,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 나오면서 점차 멀어진 음식도 있다. 하지만 그 음식에 담긴 이야기와 추억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앞 세대 삶의 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고,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어머니들이 있다. 이 만남에서 풀어내는 구수하고 정겨운 사투리와 조금씩 잊고 있던 단어들은 반갑고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준다.
맛있게 세련된 음식에 대한 글들은 자주 보았다. 이 산문집에 실린 음식들은 투박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것들이다. 소위 요즘 말하는 웰빙에 가장 가까운 음식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잘 꾸며지지도 않았지만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한 음식들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우리의 배를 채워주고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던 그 음식과 추억을 불러오는 이야기는 잠시 과거로 돌아가게 만든다. 먹는 것 좋아하는 나에게 너무 많은 추억과 음식에 대한 그리움과 욕심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