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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 살인사건 ㅣ 밀리언셀러 클럽 9
딕 프랜시스 지음, 이순영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은 딕 프랜시스의 소설이다. 예전에 이 작가에 대해 잘 모를 때 경마를 배경으로 쓴 추리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작가 중심이기보다 출판사 시리즈 중심으로 책을 읽을 때였는데 아주 강한 인상을 준 작가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 읽은 소설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이 소설은 처음 읽는다.
알고 보니 이 소설은 딕 프랜시스의 처녀작이다. 뛰어난 기수였다 부상으로 은퇴한 그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쓴 경마시리즈는 우리나라에 많이 번역은 되지 않았는데 다행히 몇 권을 가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읽은 책들은 모두 만족감을 주었다. 이번 소설도 역시 만족스럽다. 거장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은 작가다. 그래서 사람 이름 외우는데 서툰 내가 기억한다.
사건은 간단하게 시작한다. 장애물 경주대회가 열리는 도중에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 빌 데이비슨이 말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 뒤에서 달리던 주인공 앨런 요크가 이상한 흔적을 본다. 장애물 근처에서 철사를 본 것이다. 이를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게 말하지만 다음 날 도착하니 이미 증거는 사라졌다. 이 사건에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특별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의문을 말한다. 이것을 불편하게 생각한 범인으로부터 협박을 당한다. 여기서 협박에 굴하지 않는 고집과 의문이 확신으로 변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전개로 이어진다. 전형적인 구성과 전개인데 덕분에 편하게 읽힌다.
현대 스릴러에서 자극적인 사건들이 워낙 많이 벌어지다보니 강도가 약한 사건을 접하면 약간 밋밋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의 사건도 약간 밋밋하다. 사고로 위장한 사건을 다루는데 그 발단과 전개와 마무리가 큰 긴장감을 불러오지는 않는다. 긴장감이 급격히 고조되지는 않지만 편안하게 읽히면서 상황이나 앞으로 펼쳐질 사건들이 즐거움을 준다. 특히 이 소설을 백미로 꼽고 싶은 마지막의 말 타고 도망 다니는 장면은 머릿속에 멋진 영상을 떠올려준다. 몇 편의 영화에서 장애물을 넘는 멋진 말들을 본 기억이 있기에 이 장면들과 연결되면서 상상에 빠져들게 한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고전추리소설의 한 형태를 보게 된다. 사건과 여인과의 사랑과 예상하지 못한 악당과 해피엔딩. 가끔 자극에 지친 상태에서 이런 소설은 기분 전환을 도와준다. 물론 자극적이지 않다보니 초반은 약간 느슨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곧 빠져들게 되고, 경마라는 스포츠와 도박 속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긴장은 속도감을 높여준다. 이 소설을 보면서 지금까지 본 경마 영화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즐거움을 주었다. 아직 한 번도 경마장에 가지 않았다. 다음에 혹시 경마장에 놀러가게 되면 두리번거리면서 이 소설 속 장면들과 비교해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