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을 시간에서 지나간 시간으로...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 ㅣ 서른 살 심리학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8년 2월

 
20대에 서른 살이란 영원히 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그렇게 서른 살이 지난 후 그 나이는 기나긴 시간의 한 시점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서른은 큰 의미가 없다. 단지 그때부터 살이 붙는 등 신체적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 의미를 두고 열심히 노래 부를 때조차 가슴속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그렇게 좋아한 가수인데도.

서른 살이 큰 의미 없이 지나갔으니 이런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30대에 세상을 좀더 멀리 보고, 이해하게 되었기에, 더 많은 타협을 하였기에 그 숫자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전부터 남들이 의미를 두는 숫자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나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김광석의 노래에서 의미를 찾고, 자신이 나이 먹는 것에 두려움을 가진 그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느 날 자신이 이미 나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란 것을 보면 내가 많이 둔한 모양이다. 

이 책은 서른 살만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30대가 더 맞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내가 지나온 시간들과 경험을 만난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은 주변인들의 경험으로 만난다. “88만원 세대”를 지나 30대로 들어오는 그들이 이 책에서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아마 그들은 맞다고 외치고, 너무 원론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일과 사랑과 삶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각자가 다를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글 속에 많은 영화나 소설이나 드라마 등을 인용한다. 물론 자신이 상담한 사람들의 사례도 들어있다. 그 예들을 보면서 나와는 동떨어진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많은 부분 공감한다. 나 또한 그 책이나 영화 등을 보았고, 주변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직업이 심리학자이다보니 저자가 보는 이야기도 심리학으로 풀어내는데 나와는 다른 시각임을 깨닫는다. 그 다른 시각 속에서 만나는 이야기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왜 그럴까? 아마도 살아오는 동안 많은 부분 유사한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중에서 놀라운 사례도 있다. “헬리콥터맘”이란 사람들이 자식들을 위해 펼치는 대활약이다. 취업설명회를 자식 대신 찾아가는 일도 놀랍지만 면접까지 자신이 자식을 잘 아니 자신을 보라는 말에선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이나 다른 사람에게 투여해서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극에 달한 것이다. 이와 다르지만 나 자신도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싶은 마음이 많았던 것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쿨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거나 자신보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거나 지나간 선택에 아쉬움을 느끼거나 하는 일들이 이미 지나온 경험이지만 지금도 남아있는 것들이다. 다른 책들에서 이미 이에 대한 해결책을 보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적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랑은 확인하는 게 아니라 확신하는 것”이란 문장에선 혹시 나도 확인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지나간 사랑들을 되돌아보았다. 여자친구의 사소한 행동에 질투를 느꼈지만 의연한 척 한 순간도 생각났다.

전체적으로 쉽고 재미있고 빠르게 읽힌다. 가끔 집중을 요하는 대목이 나오긴 하였지만 가독성이 좋다. 읽다보면 가끔 저자도 속단이나 단정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 있다. 한 예로 마누라가 죽으면 남편이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는 말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이 말이 남자들의 상상에서 시작하였을 것이고 추측하는데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사례에 대한 해결 방식들이 가끔은 너무 원론적이다. 비록 원론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겠지만 아쉬운 느낌이 든다. 심리학에서 종종 무시되던 서른 살 고민을 파헤쳤다고 하는데 이 책을 서른에 한정하지 않고 그 나이를 맞이하거나 지나온 사람들이 읽어도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