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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와 세탁부 프리가 - 아흔아홉 번의 세탁계약과 거울의 세 가지 수수께끼 ㅣ 판타 빌리지
조선희 지음 / 노블마인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아돈의 열쇠’를 아주 재미있게 읽는 나에게 조선희의 신작 소식은 마음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아돈의 열쇠’를 먼저 읽은 나 같은 사람에겐 약간 의외의 작품이다. 비록 전작처럼 장대하고 비극적이고 화려함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잘 짜인 구성과 독특한 등장인물들은 색다른 재미를 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전작이 마음 한 곳을 무겁게 하고, 그 놀라운 세계에 감탄하게 만들었다면 이번 소설은 상큼하고 깜찍한 느낌을 주었다.
황당하게 시작한다. 여주인공 프리가의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이다. 남겨 놓은 편지에 친딸이 아니라고 말하고, 친부모에 대한 정보를 적으려다 함께 도망간 남자의 부름에 그만두고 떠난다. 15살 소녀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집안에 있는 귀중품들을 모두 들고 떠나 생활 자체가 어렵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미등록 불법마법사 지비스 졸토의 세탁부로 취직한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쉽지만은 않다. 취직한 집에 살고 있는 주인이나 청소부나 비서나 요리사, 한 명 한 명이 범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판타지 소설에서 기대하는 화려한 마법은 이 소설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해리 포터’ 같은 친구나 ‘반지의 제왕’ 같은 장대하고 험난한 모험도 없다. 비장하거나 무시무시한 유령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물론 주인공들과 대립하는 존재는 있다. 그 존재가 마법위원회 위원장 그리올이다. 무시무시한 마법을 가진 독보적인 마법사다. 하지만 그도 약점이 있다. 바로 심장을 고르까 여왕에게 붙잡힌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책 속의 다른 장면 속에서 혹시 그도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뭔가를 이루거나 찾아야 하는 모험이 없다보니 긴장감이 약하다. 다행이라면 괴팍한 주인공 지비스의 놀라운 마법과 발명품 때문에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프리가와 지비스의 알콩달콩한 싸움과 행동은 긴장감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자신의 감정을 서투르게 숨기는 지비스와 호의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는 프리가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세상에 이렇게 둔한 단짝이 있을까 할 정도다. 그리고 지비스의 정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는 조금씩 긴장감을 불어넣어주고, 새로운 국면으로 끌고 간다.
작가는 이 소설 속에 꽤 알려진 동화의 모티브 몇 가지를 집어넣었다고 한다. 당장 생각나는 것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지비스의 행동과 성격에서 하울의 흔적을 보았다면 착각일까? 이처럼 친숙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나 등장인물이 나온다.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에 빠진다. 수많은 판타지나 동화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뒤집고 있지만 확실하게 윤곽을 드러내지 않으니 약간 답답하다. 어느 날 갑자기 휙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곳곳에서 작가는 장난을 친다. 설정에서부터 판타지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두 공간을 마련해두었다. 우리의 현실에서 빌린 이름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틀어 “네꼬라지 다편치”로 바꾼 이름은 약간 유치한 느낌을 주지만 이 소설의 특징을 잘 나타내준다. 무거움이나 어두움을 걷어내고 가볍고 유쾌하고 즐거운 느낌을 주는 소설임을 말한다. 아마 ‘아돈의 열쇠’가 너무 많은 힘겨움을 준 것이 아닐까 멋대로 상상해본다.
소설은 이번 권으로 완결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다음 권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고? 먼저 이런 멋진 등장인물과 설정을 두고 그만 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고, 탁월한 비서 유이의 정체와 프리가의 출생 비밀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악당 그리올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언제 다음 권이 나올지 벌써 기대된다. 안 나오면 크게 실망하고 우울증에 빠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