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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 ㅣ 밀리언셀러 클럽 79
엘레나 아르세네바 외 지음, 윤우섭 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읽는 러시아 추리소설이다. 단편집으론 처음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 알렉산드라 마리니나의 소설들을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는 나에게 반가운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에 담긴 10명의 여성 추리작가의 크리스마스와 새해까지의 미스터리가 예상한 강한 충격은 없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왜 여성 추리작가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작가의 이름들을 보면서 혹시 하는 의혹을 품고 있는 사람에겐 조금 불친절하다. 어쩌면 여성 추리작가가 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문도 생긴다. 이 부분은 출판사가 판단할 몫이니 넘어가자.
이 추리소설 모음집에서 왠지 모르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향기를 느꼈다면 착각일까? 아니 좀더 광범위하게 말해서 고전 추리소설의 재미를 누렸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일상에서 시작한 미스터리나 조그마한 상상력과 관찰에 시작한 추리나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는 반전이나 이 모든 것들이 고전 추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이 추리소설들은 모두 최근에 발표된 것들이다. 핸드폰이나 거부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재미있게 읽은 몇 편이 있다. ‘니나의 크리스마스 기적’과 ‘공포의 인질 또는 내 고독의 이야기’와 ‘이지웨이’와 ‘새해 이야기’다. ‘니나의 크리스마스 기적’의 경우 탐정의 끈임 없는 노력도 물론 빼놓을 수 없지만 한 여성의 심리를 이용한 음모가 사회 현실과 맞물려 들어가면서 재미를 주었다. ‘공포의 인질 또는 내 고독의 이야기’는 한 여성의 독백으로 시작하여 잠시 현실로 돌아와 독백으로 마무리되는 구성이다. 처음의 독백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장면이 약간 생소함을 주었지만 마지막 독백에서 모든 의문을 풀어준다. 이야기 내용은 재미있는데 분량 등을 생각하면 불친절하기도 하다. ‘이지웨이’는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본 단편이다. 여기서 이지웨이는 가방 상표다. 이 가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몇 시간의 이야기가 추리작가의 등장과 시선과 상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앞에 나온 뉴스와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탄탄한 구성이다. ‘새해 이야기’는 새해 전날 벌어지는 사람 좋은 한 여자의 고군 분투기다. 너무 사람이 좋아 친구가 잃어버린 거금을 주변사람들에게 빌리러 다니는 모습이 유쾌하고 세상에 이런 여자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의사의 집착과 편집증이 만들어낸 이야기인 ‘천사가 지나간다’나 숨겨 놓은 감정을 살인으로 이어가는 ‘마지막 유언’이나 퀴즈 당첨으로 함께하는 유명인과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과 살인사건을 다룬 ‘러시아식 성탄절’이나 한 재수생 하녀 탐정 이야기를 다룬 ‘복수의 물결’도 읽는 즐거움을 준다.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경우 트릭은 드러나지만 즐거운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본 ‘예정된 살인’은 점점 무서워지는 러시아의 단면을 보게 되면서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납치, 유괴, 살인, 유쾌한 해프닝 등을 다룬다. 특별한 것은 ‘니나의 크리스마스 기적’을 제외하고는 경찰이나 탐정이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추어들의 유쾌하고 재미난 활약이 돋보인다. 하지만 약간은 차갑고 강렬한 추리소설을 기대한 사람에겐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