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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기관
이토 케이카쿠 지음, 김준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6월
평점 :
이전에 이토 게이카쿠의 소설을 한 권 읽었다.
<죽은 자의 제국>인데 엔조 도와 공저라고 나오지만 실제 거의 전부 엔조 도가 썼다.
이토 게이카쿠가 프롤로그를 썼고, 그의 얼개에 따라 완성한 것이다.
그런데 문장 때문인지, 내용 자체 때문인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이때의 경험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재간된 이 책을 읽었는데 그때와 달랐다.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도 재밌지만 문장의 흡입력이 훨씬 뛰어났다.
이것은 한 인터뷰에서 두 작가가 풀어낸 대화 속에 답이 있다.
그리고 <죽은 자의 제국>을 이토 게이카쿠가 완성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이런 아쉬움은 이번 소설이 보여준 재미와 세계관 때문에 생겼다.
대단한 흡입력과 독특한 설정에 빠져 재밌게 읽었다.
작가의 세계관과 철학 등이 곳곳에 표현되는데 이것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세계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것을 “정보 그 자체는 평범한 자본주의적 상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했다”와 엮는다.
한 번도 정보를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정보의 중요성을 말하는 수많은 책들이 현재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니니까.
물론 이 문장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학살기관애서 근무하는 주인공의 활동과 그 활약 등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주인공은 클래비스 셰퍼드 대위고, 그의 활동은 양심에 위배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클래비스는 교통 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인 어머니를 임종을 결정했다.
생명유지 장치를 내려놓게 했는데 이것이 그의 활동과 맞물려 원죄를 느끼게 한다.
잠시 죽은 어머니를 만나 죽은 자들의 세계에 머무는 장면들이 계속 나온다.
그의 팀은 학살이 있는 지역에 잠입해 학살 명령자를 죽인다.
이 과정에 그들은 엄청난 학살의 장면을 보지만 결코 개입하지 않는다.
이런 절제가 가능한 것은 업무를 위해 수많은 정신 및 화학 작업을 받았기 때문이다.
출동한 현장에서 이것은 문제가 없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른 문제다.
그의 팀원 중 알렉스가 자살한 것도 이런 힘든 경험과 관계 있다.
세계를 위해 암살을 했지만 그는 주체적인 결단도, 선택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죄를 생각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학살의 현장으로 투입되는 클래비스의 팀을 보면 SF 액션의 극단 같다.
온갖 최신 장비와 정신적 작업을 통해 그들은 현장에 투입된다.
비행기도, 낙하하는 장비도 현재 실제 존재하는 물건들이 아니다.
그리고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핵 폭발은 핵 억지력에 의문을 품게 한다.
물론 이 놀라운 사건이 한 언어 학자가 학살의 문법을 발견하게 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학살의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뒤에 있었다.
그를 잡거나 암살하기 위해 클래비스의 팀이 출동했지만 항상 한 발 늦었다.
이쯤 되면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사실은 나중에 밝혀지면서 더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갑작스레 발행한 한 국가의 학살 현장은 참혹하고 잔혹하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전에 있었던 유럽과 아프리카의 제노사이드가 떠올랐다.
작가는 이 사실을 소설로 끌고 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침투해 임무를 수행하는 팀의 활약을 아주 멋지게 그려낸다.
특수 장비, 미래의 무기, 새로운 산업,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개인인증까지.
피자를 주문해도 신체 정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이지만 이 시스템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고, 그 틈새에 파고 든 사람들의 삶은 또다른 볼거리다.
물론 이것은 학살의 문법을 발견한 존 폴이 잡히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죄의식, 학살 현장의 참혹함, 최신 장비의 강력함 등이 교차한다.
출동하기 전 일상은 평범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자신이 사는 세상의 시스템에 허점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가진 한계.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의 암살이 정당하다고 자위하는 심리.
임무 때문에 외면해야 하는 학살의 현장과 아이들을 죽여야 하는 현실.
철학, 사회학, 심리 등을 엮어 풀어내면서도 액션이 주는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존 폴로 대변하는 학살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은 추악하기만 하다.
존 폴을 좇고, 그의 존재를 탐구하는 과정과 마무리는 미스터리 소설 같다.
그래서 제1회 PLAYBOY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재 이 책을 제외한 다른 책들이 모두 절판인데 후속작이 나올 모양이다.
당연히 기다리지고, 그의 단편들도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