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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2023년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다른 문학상도 많이 수상했다.
이런 이력이 눈길을 끌었지만 자전 소설이자 에세이, 회고록이란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읽다 보면 이 책이 소설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자신의 성적 확대 피해 경험을 기반으로 깊은 바닥까지 사고가 파고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신의 피해 사실을 나열하기보다 이것을 확장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처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해석한 부분이다.
작가는 피해자의 심리가 아닌 가해자의 심리를 알고 싶어했는데 이 소설에 그 부문이 나온다.
그리고 롤리타가 피해자란 부분을 들려준 대목은 기존 이미지를 깨트리는 순간이었다.
오래 전 나보코프의 소설을 힘들게 읽어 무한정 미루어 둔 것이 반갑게 다가왔다.
이 책을 단숨에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간중간 사실적인 설명과 묘사는 자극적이고 역겹다.
이런 부분이 어떤 독자에게는 불편할 수 있지만 실제 있었던 일들이다.
자신이 당했던 순간, 그 이후의 일들, 이 사실을 알리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소송을 하는데도 1년이 더 걸렸다.
현실의 무게가 바로 진행하는데 작은 걸림돌이 된 것이다.
그 현실적 무게는 그 남자와 결혼해 낳은 남매와 경제적 문제 등이다.
소송이 벌어진 후 있었던 이야기들은 이게 프랑스인가 할 정도로 우리와 닮았다.
특히 가해자가 출소했을 때 그와 인사를 하고 평소처럼 대하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그가 자신들에게 피해를 끼쳤지 않았다고 말할 때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폭행과 강간을 당하지만 신고하는 경우는 적다.
신고해도 소송으로 가는 경우는 더 적고, 승소하는 경우는 더 적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강간당한 여성에 대해 쑥덕거리던 어른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결코 피해자를 도와주거나 위로하기보다 하나의 소문으로 소비했다.
이것은 한 편의 시 인용에서 잘 드러나는데 아주 서늘하고 가슴 아프다.
한 소설에서 자신이 강간당하는 것을 본 소년에게 피해자는 말한다.
소년이 본 것을 책으로 써야 하다고. 직접 본 것을 잊어버린 권리가 없다고.
“침묵은 배신이다.” 이 문장을 읽고 왜 방관자들이 가해자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피해자의 집이 여러 해 동안 강간범의 장소가 된 것보다, 강간범이 있었다는 사실보다.
“마을에 대한 평판이 달라지게 하는 말, 마을 사람들에게 치욕을 안기는 고소 행위”에 더 분노한 부분이다.
너무 낯익은 장면이라 놀랍지 않지만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소송에 대해서도 다행히 작가는 의붓아버지의 인정으로 쉽게 넘어간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실제 소송이 벌어졌을 때 이야기 속에 서로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불일치가 말하는 사람의 신뢰를 의심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세부 사항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나머지 전제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된다.”
어린 피해자에게, 오래된 기억 속에서 정확한 기억을 요구하는 자체도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고소장을 낼 때, 나는 날짜를 정확하게 기재해야 했다.”와 같다.
이런 현실이 수많은 성폭력 희생자들을 주저하게 하고, 가해자들이 달아나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그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하는 말들과 행동에 자신이 한때 피해자였다는 변명도 들어있다.
이런 가해자의 피해성을 너무 쉽게 스릴러 등에 인용하는 부분의 지적도 생각할 바가 많다.
아동 성폭행을 고문에 비교할 수 있을까? 확대 적용이라 보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피해자인 작가는 “그렇게 비교하는 것을 스스로 금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일회성이 아닌 오랜 세월의 아동 성폭행과 고문의 비교는 단순하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경험도, 제대로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둘을 비교하는 것은 나의 상상력 밖의 일이다.
다만 두 사건의 피해자들이 겪은 후유증 등으로 잠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읽는 내내 너무나도 솔직한 감정을 표현해서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강간이었던 성행위가 자신의 자발적 성행위로 바뀌었을 때 느낀 감정 변화도 인상적이다.
평생 불감증으로 고통받았을 것 같은 그녀의 삶이 아니란 점에서 다행스럽다.
하지만 이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란 것을 분명히 한다.
하나의 긴 흐름 속에 여기저기를 돌면서 다양하게 풀어내는 사고의 깊이는 대단하다.
읽기 편한 책은 아니지만 이 부분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