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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 세계 ㅣ 크로스 1
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크로스 시리즈 첫 권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두 작가가 ‘윤리적 딜레마’라는 주제로 작업했다.
이 두 작가는 빠르게 읽을 수 없지만 매력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다.
당연히 두 작가가 참여한 책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작가가 풀어낸 주제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울림을 주었다.
이번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더 다가온 것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이다.
김연수의 <우리들의 실패>는 나의 기대 혹은 흐름 파악의 실패로 깊게 다가오지 못했다.
아마도 좀더 직접적으로 그 사건을 다루지 않은 것 때문인 것 같다.
김연수의 <우리들의 실패>는 기자가 인터뷰한 손동화의 과거를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대통령 친인척의 국정 개입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건 이야기는 없다.
계엄 직후 일본으로 달아났는데 기자가 연락해서 그를 만난다.
손동화의 과거 이야기는 뚝 때어놓고 보면 한 소년의 성장기다.
어머니의 암, 아버지가 놓쳤던 서울에서의 생활과 자산.
구 서울역사 그릴에서 처음 맛본 돈가스의 맛과 기억.
막 팽창하던 서울의 풍경과 부동산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
친척의 결혼식과 한 소녀와의 만남, 작은 위로와 대화.
여기에 삼촌이 들려주는 노자의 ‘짚으로 만든 개’ 이야기.
이 이야기와 국정 개입 사이에 직접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소년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한국 현대사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다.
소년의 풋풋한 기대와 어리둥절한 모습.
암 수술 후 완치 기대와 어머니의 바람을 이루르는 노력과 그 결실.
정해진 길은 기대를 무너트리고, 그는 현실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 뒤와 현재 사이의 간극을 작가는 생략했다.
이 과거 이야기가 현재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인간이기에 생각을, 선택을 멈출 수는 없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내가 놓친 부분이 무엇일까 계속 생각한다.
마지막에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 에피소드는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정적 순간>은 좀더 즉각적으로 다가왔다.
미즈마키 가스미가 존경하던 사진작가의 유품에서 발견한 사진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 사진은 어린 소년의 나체 사진인데 정확한 묘사는 생략되어 있다.
이 발견이 사진작가의 유고전을 기획한 미술관에서 문제가 된다.
미투와 아동 성추행 등의 문제가 불거진 최근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
모른 척하고 전시회를 개최해도 되지만 혹시 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 사진의 피해자가 나타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한몫 했다.
작가는 이 발견과 상황에 대해 일기처럼 매순간을 기록한다.
이 기록은 발견과 전시 연기를 둘러싼 논쟁을 다룬다.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그 사진을 없애고 모른 척하는 것이다.
나중에 나타날 피해자에 대해서도 유족들에게 떠넘기면 된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본 것과 그 사실을 아는 관계자들의 마음과 생각은 다르다.
자신이 존경한 사진작가의 이 사진이 어떻게 해서 유품에 섞여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성착취와 학대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의 사연은 이 문제를 더 깊게 들여다보게 한다.
유족과의 갈등, 윤리적인 문제, 선택의 기로 등이 엮인다.
짧은 단편이지만 다양한 장면들을 삽입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상자를 열지 않은 순간을 생각하는 주인공을 마주한다.
사진작가가 이전까지 이룬 업적과 유품에서 발견된 사진이 만들어낸 긴장감이 잘 전해진다.
역사 속 명화나 소설 등을 끌고 와 고민하게 한 것도 생각의 폭과 깊이를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