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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소판돈의 낙서견문록
김종광 지음 / 스토리코스모스 / 2025년 8월
평점 :
집에 김종광의 소설이 몇 권 있지만 장편은 읽은 적이 없다.
단편으로 가끔 여기저기에서 읽은 적만 있다.
대할인의 시대 혹은 마일리지 소진을 위해 사 놓은 책인데 늘 다른 책들에 밀렸다.
이번 책도 얇은 분량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밀렸을 것이다.
다른 책을 읽고 있는 중간에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과 전개에 푹 빠졌다.
가상의 율려국 속에 한국의 현실 등을 뒤틀어 멋지게 버무렸기 때문이다.
읽다가 기시감이나 익숙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 읽은 후 알게 된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첫 단편 <낙서인 서열 국민투표>가 2008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이란 것이다.
이때 제목은 <서열 정하기 국민투표>였다.
작가의 분신인 소판돈은 한 번도 이런 상을 받은 적이 없지만 작가는 있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작가는 문예창작과 교수다.
작품 속 화자와 현실의 작가가 다른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질감을 느낀 것은 그만큼 소판돈에 감정 이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도 거의 20년이다.
율려국은 한국과 중국 사이에 존재한다고 한다.
<허생전>에 다루어진 곳이지만 작가의 <율려낙원국>과 맥이 닿아 있다.
이곳도 일제강점기를 거쳤고, 그 후 독립된 나라로 발전했다.
적은 인구, 풍족하지 못한 자원 등으로 국가의 부를 매춘으로 일군다.
작가 소판돈이 이 나라에 온 것은 두 가지 목적 때문이다.
하나는 이 나라에 대한 견문록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춘이다.
그런데 그가 비싼 돈을 주고 도착한 날이 낙서인 서열 국민투표 전날이다.
율려국 국민들은 낙서라는 문학을 즐기는 데 국민 모두가 낙서 공부를 위해 일을 멈추었다.
소판돈이 바라는 매춘도, 밥을 먹을 식당도 멈추었다.
문학에 서열을 정하는 것이 웃기지만 그들 나름의 논리도 있다.
첫 이야기가 끝난 후 다시 율려국에 입국하려는데 그는 경찰에 끌려간다.
<붉은 방의 체 게바라>는 좀더 역사 속 현실을 가지고 와 이야기를 풀어낸다.
말도 되지 않는 현실과 폭력, 정치적 목적을 지닌 고문 등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단순히 풍자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은 그 시절의 공포를 옆눈으로 살짝 엿봤기 때문이다.
연재가 늘어나면서 율려국에 대한 세부 내용이 덧붙여진다.
이어지는 연작들은 한국 문단의 파벌 등에 대한 비판, 현주소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곡낙서가>와 <섹시낙서상> 등에서 드러나는 문화권력에 대한 부분은 특히 그렇다.
다른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넘어가려면 율려국 낙서인이 한국도 그렇지 않냐고 말한다.
이런 풍자와 과격한 혁명이 끼어들어 만들어내는 풍자극은 재밌지만 왠지 씁쓸한 점도 있다.
평소 무겁고 묵직한 이야기를 읽다가 이런 메타풍자를 읽으니 괜한 웃음이 나온다.
작가의 다른 소설도 책정리하면서 찾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