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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개미지옥 - 2007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문학수첩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제5회 문학수첩 작가상 수상작이다. 이런 문학상이 있는 줄 몰랐다. 뭐 불과 몇 년 전에 문학동네에서도 수상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나 현재 한국에도 수많은 문학상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의미이기도 하기에 선택에 많은 도움을 준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취향에 맞지 않거나 그냥 멀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시선이 한 번 더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제목만으로 소설의 내용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공간과 시간이 한정된 소설인데 첫 장을 펼치고 몇 쪽을 읽지 않았는데 이 제목에 공감하게 되었다. 단 3일 동안 시내 백화점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세일 기간 중 여러 사람들의 내면과 행동을 교차시키고, 서로가 관찰자가 되어 묘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솔솔한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 내면을 그려내는 인물들이 백화점 점원이나 아르바이트나 상품권 매매자 등이라는 점도 제목과 묘하게 어울린다.
백화점은 엄청 화려하고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곳이다. 세심하고 계산적으로 공간이 연출되어 있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그 화려함에 취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사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손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어난다. 이런 현상을 작가는 포착하여 그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이는 화려함에, 대화 속에 나오는 브랜드에 욕심은 자리를 튼실하게 잡고 그들의 시선과 마음을 마음껏 부채질한다. 백화점에 강림한 지름신은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자신의 신전에 많은 카드 전표를 쌓아놓게 한다.
카드가 생긴 후 모든 슬픔과 기쁨이 카드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는 소영이나 돈 많은 아줌마들이 지나가면서 한 말을 자신의 신조로 삼고 무리한 다이어트와 백화점 쇼핑을 계속하는 지영이나 명품 매장에서 자신을 유혹한 남자에게 몸을 파는 정민이나 마트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백화점 쇼핑과 점원들에게 푸는 현주 등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 아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황폐화 되어있다. 일과 생활에 치이고 늘 금전 부족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백화점의 판타스틱한 풍경은 개미지옥처럼 한번 발을 잘못 디디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 된다.
쉽게 읽히는 문장과 내용이다. 분량도 많지 않아 부담이 없다. 하지만 비슷한 이름과 비슷한 등장인물들 때문에 가끔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심사위원들이 지적한 대목에 동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재미와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낸 점에선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책 속 등장인물들이 백화점의 물건에 빠져있다면 아마 나는 책들이 만들어낸 개미지옥에 발은 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