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나의 세계
마이클 톰프슨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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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정말 놀라운 설정이다.

매년 생일이 되면 한 사람의 기록과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

이것은 아이를 낳은 부모에서부터 시작했다.

인생의 계획에서 벗어났지만 사랑하는 아들의 탄생.

첫번째 생일을 축하해야 할 아침에 발견한 낯선 아기.

처음 이 장면을 읽으면서 아기의 사진, 엄마의 출산 흔적 등을 떠올렸다.

하지만 작가는 기억과 기록과 다른 증거물까지 전부 지웠다.

자신들의 집에 있는 낯선 아기는 보육시설로 갈수밖에 없다.

이렇게 토미는 자신의 부모를 떠나 목장이라 불리는 곳으로 간다.


처음 이 설정을 보고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떠올랐다.

혼자만 시간의 흐름이 거꾸로인 사람의 인생.

그런데 토미는 1년마다 그의 존재가 모든 사람과 기록에서 재시작된다.

아기일 때는 누군가가 그를 버리고 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그는 자신이 스스로 왜 이곳에 있는지 설명해야 했다.

이런 황당하고 무섭고 힘겨운 삶을 생각하면 쉽게 미래가 떠오르지 않는다.

당연한 듯 이 재시작을 받아들이는 일이 언제쯤 가능한 것일까?

기록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은 재산도 모으지 못한다는 의미다.

현실에서 돈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토미는 자신의 재시작이 지닌 작은 허점 하나를 발견하고 작은 희망을 가진다.


보육원에서 살 때는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버려지고, 돌봐야할 아이들이 항상 이 목장에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여덟 살이 되면 이곳을 떠나 사회로 나가야 한다.

처음으로 토미가 사랑을 느꼈던 캐리도 이곳을 떠났다.

캐리가 학교 친구들의 희롱을 참지 못하고 자살하려고 할 때 구해준 것도 토미다.

물론 이 기억도 생일이 지나 재시작하면서 다른 것으로 바뀐다.

자신이 한 일이 다른 사람의 일로 포장되어 알려지는 것을 봐야 했던 토미.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방법을 찾는데 그것은 그의 이름 등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가 이룬 성과, 업적, 사업 등은 모두 생일이 지나면서 재시작한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토미, 보는 내내 안타깝고 힘들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토미가 질문을 던지지만 답이 없다.

이 삶에 익숙해지고, 작은 허점이라도 하나 더 찾아야 한다.

교통 사고 이후 병원에서 친해진 조시를 다시 만난 것은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다.

병원에서 두 사람이 계획했던 일을 이루기 위한 합작.

하지만 매년 재시작해야 하는 상황은 미래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사회 경험이 전무했던 소년은 힘들게 모든 돈을 모두 털리기도 한다.

불운과 안일한 행동이 불러온 작은 실수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재시작은 조금의 자비도 없다.

읽으면서 그의 불행이 언제 끝날까? 어떻게 이어질까? 계속 궁금했다.


내가 살지만 내가 없는 세계. 토미가 살고 있는 세계다.

한 명의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강한 의지와 함께한다.

연인을 사귀어도 생일이 지나면 재시작해야 하는 관계.

가장 친한 친구 조시와의 동업도 편법을 사용해야 하는 세계.

이 세계의 규칙을 깨트릴 방법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미션을 통과해서 보통 사람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장르 소설을 많이 읽다 보니 최고의 연쇄살인범일 수 있겠다는 쓸데없는 생각도 지나간다.

나 이외에 아무도 나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계 속의 생존.

답답하고 안타깝고 먹먹하지만 작은 희망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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