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깨다 -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
정병호 지음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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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역사 서적을 이전보다 덜 읽고 있다.

방송으로 나오는 정보를 많이 보다 보니 책에 눈길이 덜 간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부분도 방송이나 다른 쪽에서 더 많이 만난다.

그러다 이 책의 소개글을 읽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희생자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강제노동의 힘들고 어렵고 폭력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이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발굴과 귀환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그것도 한국에서 처음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일본인의 연락으로 시작되었다.

이 연락과 관심, 함께한 발굴 작업과 그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고인이 되신 정병호 교수는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자신의 관심분야인 어린이집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가 한 스님을 만났다.

도노히라 스님은 보통과 다른 방식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집에 머물면서 이 어린이집의 운영방식 등을 공부하려고 했다.

이때 도노히라가 슈마리나이 현장에서 발굴한 조선인 유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한국인이지만 이 유골 발굴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 집에 머물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그리고 이 동행이 그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게 한다.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 슈마리나이 우류댐 공사에서 죽은 강제노동자 유골 발굴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유골 발굴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흐른만큼 발굴은 점점 힘들어진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범죄를 가리기 위해 방해하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감안하면 도노히라와 일본 시민들의 행동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병호 교수는 첫 발굴작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한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들이 한 곳에 모여 생활하면서 유골 발굴 작업을 했다.

이때 이 두 나라 사이에 깔린 갈등이 문제가 되어 드러나기도 했다.

덮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가진 부분은 쉽지 않은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 들기보다 먼저 귀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첫 번째 유골이 출토되면서 이 감정들은 사라진다.


첫 공동 유골발굴은 그렇게 많은 발굴로 이어지지 않았다.

더 많은 유골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숲으로 변한 곳을 파헤쳐야 하는데 쉽지 않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유골발굴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 사유지 문제, 극우단체의 반대, 자금 부족 등의 많은 문제가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한일간의 문제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동아시아로 확장되었다.

이 확장은 그 현장이 일제강점기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려준다.

차별은 언제나 구체적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누군가에게 가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할 때 뜨끔했다.

어떤 이에게는 더욱 첨예한 현실”이라는 지적은 사고와 인식의 공간을 넓혀주었다.

이런 인식들이 그가 참여했던 모임을 규정하고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양한 곳에서 발굴된 유골을 어떻게 할 것인가?

유족을 찾아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고, 바라지 않는 유족도 있다.

한인 시민단체들이 협력했던 일에 정부가 끼어들면서 생긴 문제는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정병호 교수가 화를 내고 그만둔 그 일을 도노히라는 열심히 도왔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낙화산 인사들의 젠체하는 행동과 모습이 떠올라 화가 났고, 부끄러웠다.

유골을 계속해서 일본에 모실 수 없다는 생각에 진행된 ‘70년만의 귀향’이란 유골 봉환 행사.

당시 두 정부의 방해로 그 과정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상업적 목적도 있었지만 필요한 도움이었고, 순수한 마음들도 대단히 많았다.

유골이 옮겨지는 과정에 유골이란 사실을 숨겨야 했다는 부분은 가슴이 아팠다.


일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이명박근혜 정부의 합의에 분노한다.

사죄라는 말도 정치적 수사”에 가깝고, “’법적 책임’이란 표현이 빠져”이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피해자들과의 충분한 대화도 없었고 너무 빠르게 진행되었다.

두 국가의 최고 권력이 합의했다고 해결된 것처럼 보도하는 재래 언론도 있었다.

이런 방식이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 또 다른 가해 가능성을 열어놓는지 말한다.

이런 현실 정치에 비해 동아시아 시민단체의 협력 행위는 다른 가능성을 연다.

잊게 하고, 왜곡하고 싶은 권력자들의 바람과 달리 사람들은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처음 생각과 다르지만 긴 시간의 활동과 노력은 잊고 있던 역사의 기억을 깨운다.

이런 노력과 사실들이 더 많이 알려지고, 더 길고 깊은 역사의 잠도 깨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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