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린 도시, 서울
방서현 지음 / 문이당 / 202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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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제목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서울을 버린다니 대단하다. 그런데 왜 버릴까?

누구는 이 도시에 살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부러워하는데.

산언덕에서 시작해 숲속 호수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한때 유행했던 수저론이다.

흙수저보다 더 낮은 똥수저를 등장시킨 것도 재밌다.

혹시 똥수저보다 더 낮은 수저는 무엇일까? 잠시 머리를 굴러본다.


의도적인지, 아니면 내가 이름을 찾지 못한 것일까?

화자인 똥수저 주인공은 이름으로 한 번도 불리지 않는다.

단순히 목차만 보면 주인공의 신분 상승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저론의 벽은 높고 두꺼워 쉽게 넘어갈 수 없다.

다만 그 수저들의 생활을 살짝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똥수저 동네에서 흙수저 동네로 이사를 가지만 신분까지 상승한 것은 아니다.

이 이사도 살던 집에 불탄 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게 된 곳이다.

지층의 방 하나짜리 집. 그래도 이전 집보다 좋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현실 속 집은 벌레와 곰팡이로 가득하다.

복지가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과연 그 의도가 순수했는지 의문이다.


처음 이 집에 이사왔을 때 같은 건물에 살던 사람들은 그곳을 지하 창고라고 불렀다.

벌레 많고 곰팡이가 가득하지만 똥수저 동네보다 낫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동수저로 넘어가야 할 텐데 은수저 동네 이야기로 바로 넘어간다.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바로 은수저 동네다.

금수저 동네는 최고급 빌라촌인데 이곳의 풍경도 보여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이런 동네로 이사 가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이는 초등학생이고. 힘든 현실을 그대로 경험한다.

이 수저 동네의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실현한다.

이 차별에 깊이를 더하는 존재로 초등학교 교사를 내세웠다.

그 담임이 내 준 숙제는 이 현실을 비틀어 보여준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화자,

할머니와 함께 폐지를 주워 그나마 목숨을 유지한다.

아이들은 화자를 쓰레기라고 부르고 비아냥거리고 무시한다.

이 행동의 뒤에는 그들 부모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어른의 존재와 행동이 왜 중요한 지는 윤우 엄마의 말과 행동에서 잘 드러난다.

마지막 금수저 동네 이야기를 다룰 때 그들의 삶은 나도 쉽게 공감할 수 없다.

온몸에 비싼 물건을 휘두르지만 이들의 추악한 심성은 너무 쉽게 드러난다.

밖에 보여주는 그들의 삶과 현실은 그 괴리가 대단하다.

현실의 파편들이 소설 곳곳에서 조용히 빛을 반사한다.


할머니는 화자를 손녀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이 소개 이면에는 어떻게 이 아이를 키우게 되었는지 살짝 알려준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화자.

이 화자의 의문에 답하는 어른들의 대답은 허망하기만 하다.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과거는 또 어떤가.

처참하고, 안타깝고, 힘겹고, 어려운 삶이다.

하지만 할머니와 아이는 포기한 채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는다.

이들에게 조금씩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고 다른 의도를 의심한 내 모습이 부끄럽다.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르고,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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