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로 가야겠다
도종환 지음 / 열림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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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맞다면 정말 오랜만에 도종환의 시집을 읽었다.

<접시꽃 당신> 이후 한 권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 시인이 참여한 시집에서 읽은 적이 있는 것은 검색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다른 시집은 찾기도 힘들고, 이름이 헷갈린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것 하나는 이번 시집으로 도종환의 다른 시집에 관심이 부쩍 생겼다는 것이다.

시들을 읽으면서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시어들이 많았다.

그의 지나온 길을 생각하고 읽다 보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시도 있다.

난해한 현대시에 비해 잘 읽히고, 이미지도 잘 그려진다.

아마 천천히 조금씩 읽은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여덟 개의 장으로 나누었는데 각 장에 담긴 시의 숫자가 다르다.

읽을 때 마지막 ‘끝’장에서 적다고 느꼈는데 다른 장도 변화가 있다.

그리고 각 장마다 특이하게 첫 시의 문단들을 한 쪽에 적었다.

처음 이 문단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계속 이 문단과 쪽이 이어졌고, 첫 시의 내용이었다.

속된 말로 쪽수를 그냥 먹기 위한 편집이란 생각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 시의 문단들을 천천히 읽게 되면서 어느 순간 이 생각은 사라졌다.

작품 해설을 보면 이 편집 의도가 나오는데 고개를 끄덕인다.

산문의 속도”로 시를 읽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정말 딱 맞는 편집이다.


이 시집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좋다’와 ‘공감’일 것이다.

공감할 시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가슴 속으로 시어들이 파고든다.

읽을 때 메모지가 있었다면 메모해서 넣고 싶은 시들이 너무 많다.

안타깝게도 저질 기억력은 몇몇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씨앗이 결심하면 새싹도 결심한다/

 뿌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나무도 포기하지 않는다”(<도토리> 부분)

이 시를 읽으면서 강한 희망과 의지를 느꼈다.

머릿속을 스쳐간 수많은 장면과 열정과 노력들.

한 아이의 부모로, 한 조직의 장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 아닐까?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허약하며 자주

 바닥이 드러나는 사람인지/ 고요는 이미 다 안다” (<고요>의 부분)

일상에서 내가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을 고요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인정받고 싶어 몸이 뜰썩거리는 날//

시멘트 도로 귀퉁이에 핀/ 씀바귀꽃 보라/ 다만 치열하게 살아 있을 뿐이다”(<꽃들 3> 전문)

어디서고/ 산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 곳곳이 비탈이고/ 벼랑이다”(<산양> 전문)

현실에서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 그 힘겨움 속에 있는지.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고 나아가길 결심하는지도 말한다.

분노 말고는/ 가진 게 없다면/ 또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는가”(<거리에서> 부분)

이 시어를 읽고 한때 분노만 가득했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시집 뒤로 가면 감상적이거나 종교색이 눈에 들어오는 시도 보인다.

어떤 시들은 ‘다시’란 단어가 내 시선을 잡아 끌었다.

도전의 의미로 기억했던 것과 다른 의미라 단순히 단어에 빠졌던 것 같다.

귀뚜라미 다리 하나를 발견하고 그 감상을 풀어낸 시 <다리 하나>는 여운을 남긴다.

살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실수와 잘못은 얼마나 많을까?

정치인으로 살면서 느낀 감상을 살짝 풀어낸 시어도 공감한다.

마지막 시 <계엄이 있던 겨울>은 이제 일주년이 된 그 시간을 떠올린다.

체포 명단에 있었던 사람들과 나눈 대화, 음악 이야기, 다시 그때로 넘어가는 대화.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시 현실에서 마주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

그가 고요로 돌아가서 일상을 회복하고 자신을 돌아보려고 한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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