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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평점 :
첫 단편을 읽으면서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 이름으로 검색하니 재밌게 읽었던 <모든 것들의 세계> 작가다.
출간 순서만 놓고 보면 이 책이 먼저다.
일상과 판타지적 요소를 뒤섞어 풀어낸 이야기들은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준다.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와 현실의 적절한 조화는 또 다른 매력이다.
여덟 편이 들려주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기묘한 일상은 능청스럽게 풀려나온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일들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때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무너진다.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다.
한 편 한 편이 예상외의 전개를 보여준다.
아버지가 화장한 후 나무에 뿌려달라고 한 후 벌어지는 일이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이 비현실이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공원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그녀처럼 화분에 안고 왔다.
이 이상한 일을 그냥 받아들이고, 족보가 살짝 꼬이는 일이 일어난다.
<빨간 열매>는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의 결과이자 이유리 세계의 문을 연다.
<둥둥>은 아이돌을 키우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열성팬 이야기다.
교통사고, 바닷가 추락, 고가의 캐리어, 그 속에 든 마약, 아이돌 걱정.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마무리는 한계를 쉽게 짖지 못하게 한다.
갑자기 손이 브로콜리로 변한 권투 선수.
그의 연인이 화자, 이런 일이 일상적인 세계.
권투 선수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가 문제라는 것을 모두 인식한다.
<브로콜리 펀치>는 이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우리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손톱 그림자>는 죽은 후 결혼한 옛 연인의 집에 나타난 귀신을 다룬다.
이 귀신을 현재 남편이 보고 그렇게 놀라지 않는다.
전 남친의 사고사를 힘들게 넘은 그녀의 과거, 현재의 삶이 무겁지 않게 다루어진다.
반찬 가게를 차렸다가 망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왜가리 클럽>이다.
처음에는 잘 팔렸지만 어느 순간 손님이 끊어진 가게.
멍한 일상, 멍한 걷기, 이때 그녀에게 다가온 왜가리를 보는 모임.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없지만 작은 연대가 주는 희망이 인상적이다.
마음에 문제 있는 한 남성이 글쓰기 수업을 받는다.
이 남자는 돌과 대화를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한다.
모든 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설정과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난 다른 남자.
이 둘이 겪게 되는 사고와 그 남자가 말한 달 이야기가 반전 같은 <치즈달과 비스코티>
아버지가 죽은 후 새엄마와 둘이 살아가는 여학생 고미.
갑자기 그녀의 몸이 투명해진다. 투명인간이면 신나야 할 텐데 힘도 없다.
그녀가 사라진 것도 신경쓰지 않고 고미의 담임이 왔을때 새엄마의 고미에 대한 진심이 드러난다.
몰랐던 사실과 뒤얽힌 감정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변화. 묘한 분위기가 좋다.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이구아나. 이 사실을 숨긴 채 살고 있었다.
전 남친이 남긴 수족관 속 이구아나를 술 취해 만지면서 이 사실을 안다.
이구아나와의 대화, 이구아나의 꿈, 꿈을 이루기 위한 이구아니의 노력과 열정과 맹훈련.
이 사이에 풀려나오는 평범한 한 여성의 일상들. 마지막 엽서가 기분 좋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