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긴 매듭
배미주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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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다섯 여성 작가가 모계 전승을 화두로 쓴 단편집이다.

낯익은 작가도 있고, 의외로 처음 읽은 작가도 있다.

다섯 작가는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무엇을 풀어낸다.

이 대물림은 끊어지지 않는 질긴 매듭처럼 이어지고 이어진다.

그리고 각자 풀어내는 이야기는 다양한 장르 속에서 개성을 드러낸다.

묵직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단단한 문장들은 시선을 끈다.

직접적인 표현을 생략한 부분은 살짝 아쉽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각 단편이 끝난 후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도 유익한 부분이 많다.

작가 이력을 보면서 내가 놓친 소설 몇 편을 발견했다.


배미주의 <이삭은 바람을 안고 걷는다>는 근미래의 연해주가 무대다.

이상 기후와 전쟁으로 전 세계는 불안하고 불안정한 상태다.

이삭은 엄마가 몽골에서 일한 후 연해주에 버리고 간 아이다.

이삭은 장애가 있지만 대형마트 퀸즈패밀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다른 일은 모두 장애 때문에 실패했는데 카트팀에서는 도도 씨의 도움으로 일을 잘 한다.

그런데 도도 씨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 바뀐 상황, 이 시대의 분위기, 여성으로만 상속되는 퀸즈패밀리, 도도 씨의 부탁.

짧은 하루의 일상 속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불안정한 이삭의 삶이 드러난다.

이 불안정한 삶에 위로가 되는 것은 도도 씨의 연락과 작은 연대다.


정보라의 <엄마의 마음>은 여성의 초경과 집안대대로 전해지는 저주를 이야기한다.

완은 학교에서 여성의 초경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된 그녀에게 친모는 딸을 낳아 자신을 살리라고 요구한다.

만약 아들을 낳으면 먹고, 딸을 낳으면 키우라고 말한다.

엄마라고 알던 이가 이모라고 말하고, 정체불명의 검은 형체가 나타난다.

딸을 낳으라는 요청과 계속되는 비명소리, 이어지는 학교 폭력.

겨우 열세 살 소녀에게 이런 괴상한 요구를 하는 엄마.

이 저주를 끊어내는 방법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이 더 여성을 압박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내 삶을 갉아먹는 존재들은 다 버려도 됩니다.”란 작가의 말이 현실적이다.


길상효의 <행성의 한때>는 ‘종이 아니라 개체를 볼 것’이란 문장과 이어져있다.

인류가 우주로 나아갔고, 화성에 정착지를 건설한 미래가 배경이다.

은서의 연인인 해린이 갑자기 사라지기 전 한 말도 ‘종이 아니라 개체를 볼 것’이란 말이다.

이 말은 해린의 할머니 김우경 박사가 먼저 한 말이다.

김우경 박사는 심해 깊은 곳에서 새로운 종을 발견한 공로가 있다.

이 말과 함께 진화론의 반대되는 주장을 펼쳐 문제가 되었다.

화성에 정착한 사람들이 키우는 개들의 크기가 더 커졌다.

그리고 화성의 사진에서 해린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간다.

거대한 진화의 흐름을 거스른 소수의 존재. 이 상상력이 재밌다.


구한나리의 <거짓말쟁이의 새벽>은 원인 불명의 통증을 앓는 쌍둥이의 언니 지효의 이야기다.

지효는 쌍둥이가 함께 겪는 특별한 능력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통증은 갑작스럽게 지효에게 나타나고, 지효의 삶을 뒤흔든다.

불규칙적이고 갑작스럽지만 일상적인 학교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이 정도는 지효와 엄마가 생각할 때고, 학교와 학생의 생각은 다르다.

아이들은 지효의 이런 통증이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지효가 원인 모를 통증을 앓고 있을 때 지인은 최고의 학업 능력을 발휘한다.

서로 대비되는 쌍둥이,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엄마의 동생인 은조 이모.

자신의 고통을 좀더 잘 알기 위해 기록하기 시작한 일지.

그리고 밝혀지는 이 통증의 원인인 가족 성폭력과 새로운 희망.


오정연의 <오랜 일>은 신문기자 영설을 내세워 여성 대상 폭력 사건을 이야기하다.

영설의 연인인 미지는 퇴근하다 CCTV가 없는 골목길에서 살해당한다.

이런 사건은 신문의 단신 밖에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CCTV가 없는 골목길에서 계속 폭행 등의 사건이 일어난다.

경찰은 새로운 CCTV를 설치해서 시민의 안전을 돕겠다고 한다.

그리고 특정한 한 업체를 말하지만 설치가 완료되는 동안의 문제에는 답하지 않는다.

특정 성별에 가해지는 폭력, 즉각적인 대응 대신 새로운 예산만 말하는 경찰.

그 사이 사이에 끼어드는 과거 여성들의 사연과 목소리들.

이 사건을 정면에서 마주할 마음이 없는 언론사.

뭔가 생략된 듯한데 장편의 개작해서 더 규모를 키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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