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첫 몇 장을 넘겼을 때는 이전에 본 어른들을 위한 동화구나! 생각했다. 나무를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특별히 강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슴에 와 닿는 상황과 설명들이 마음속에 울림을 전해주었다. 어쩌면 많이 보아온 삶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는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진한 울림을 주는 것일까? 그리고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하나. 이 책을 원작으로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면 참 좋겠다는 것이다.

작가 이순원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제 많이 희미해졌다. 한참 한국소설을 읽을 당시 그의 작품은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왠지 어느 순간 한국소설들을 잘 읽지 않게 되면서 그도 멀리하게 되었다. 초기작에 비해 치열함이 사라진 것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마음이 변한 것일까? 어느 것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이번 소설은 정말 마음에 든다.

소설은 간단하다. 성장소설로도 우화로도 읽을 수 있다. 100살 된 늙은 밤나무 할아버지와 이제 8살 난 어린 밤나무의 세상사는 이야기다. 엄청난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쉽게 보아 넘기거나 무시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씩 느끼고 되돌아보게 된다. 평범한 삶 속에 담긴 지혜라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삶의 다양함과 존재의 가치나 준비하는 자세에서 포기할 줄 아는 용기까지, 이 모든 일상의 일들이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작가의 말을 보게 되면 작가의 할아버지가 그 밤나무 할아버지를 심은 분인데 13살에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였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을 보면 놀랍다. 소설에서 이런 꼬마가 실재하나? 하고 의문을 가졌는데 실존인물이라니 얼마나 놀라운가! 이 사실 속에 나무들의 대화와 자연의 섭리를 풀어내면서 그냥 평소에 보고 지나간 수많은 아름다움과 노력을 보게 된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쉽게 읽을 수 있지만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면서 읽다보면 경험한 자와 경험하는 자의 차이와 인생의 꼭지점에 선 자와 이제 성장하는 자의 아름다운 관계를 보게 된다. 그리고 삶의 지혜는 거창한 이론이나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일상의 조그마한 발견과 실천에서 시작함을 다시 한 번 더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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