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1 - 제자리로!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가슴이 답답하거나 분노가 차오르면 크게 소리치는 것과 힘차게 끝까지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그것은 변함없다. 비록 가끔 길가다 힘차게 달려보지만 끝없이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과는 달리 50미터도 못가 힘에 부쳐한다.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지 몇 년인지 모르겠고, 근육은 이미 약해질 만큼 약해진 상태고, 심장은 약간의 과격한 움직임도 버티질 못하는 것이다. 이런 나이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면 그들과 함께 달리는 나 자신을 본다. 출발선에 선 긴장감과 마지막 순간까지의 질주를 보다 보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천재라고 불리는 축구선수 형을 둔 가미야 신지. 중학교 시절 축구부에서 활동하지만 그냥 평범한 선수일 뿐이다. 천재인 형을 동경하지만 그의 재능이 따라가질 못한다. 고등학교 진학 후 절친한 친구 렌과 함께 있는 것 본 육상부 동기 네기시의 말과 렌과의 50미터 달리기에서 붙은 열정은 그를 스프린터의 길로 인도한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가 쉽게 될 리가 없다. 하지만 감독인 미짱은 그냥 평범한 공립 육상부에 나타난 두 인재로 기뻐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연습과 경기와 실패와 성공들.

 

이 소설을 본 사람들은 아마 일본 스포츠 만화를 많이 연상하게 될 것이다. 약간은 전형적인 스토리 진행이고 등장인물들이기 때문이다. 3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지만 그 중 엄청나게 차지하는 분량이 연습과 경기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과 갈등과 학창시절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거의 지나가듯 나올 뿐이다. 하지만 이 연습과 경기 장면은 사람을 강하게 빨아들인다. 0.01초의 세계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조금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매일매일 힘겨운 훈련을 하고, 몸을 만들고, 자신과 끊임없이 싸운다. 그 단순함에 놀라고, 그들의 열정에 더 놀라고, 그 연습량에 비해 나온 성적이 평범함에 더욱 놀란다.

 

이전에 본 수많은 스포츠 만화나 소설들은 항상 선두에 근접하거나 위협하거나 제일 앞에 있는 선수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천재라고 하여도 노력하지 않으면 다른 노력하는 천재에게 지고, 이기기 위해선 수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단순히 한두 달로 이루어지는 승리가 없는 것이다. 수많은 천재와 일등에 짓눌리며 보아온 다른 소설이나 만화와는 다른 모습이라 새로운 세계를 보는 느낌도 주었다. 어쩌면 일등을 돋보여주는 조연들일 수 있는 인물들이 당당히 주연으로 이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태어나서는 축구 천재인 형에게, 육상부에선 달리기 천재 렌에 의해 둘러싸인 신지지만 그의 정신은 놀랄 만큼 강인하다. 그들을 동경하고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보지만 그 자신을 다독이고 격려하고 독려하면서 연습하고 그들을 따라 잡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그 열정과 패기에 뭉클해진다. 청춘을 다루는 소설답게 우정이나 선후배 관계나 사랑 등을 다루고 있지만 육상이 중심에 놓인 소설이기에 꿈을 향해 달리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드라마틱하다.

 

이 개인기록 경기인 달리기를 단순히 개인경기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한 것은 400미터 이어달리기다. 배턴을 넘겨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네 명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에선 찐한 감동과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다. 아마 가장 핵심적인 부분도 이 이어달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학창시절이나 회사에서도 우리 선수의 힘찬 발걸음에 흥분하고 고함을 자연스럽게 외치듯이 이들의 질주에 마음속으로 응원으로 보내고 고함치고 함께 달리게 된다. 결과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고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긴장감은 어느 소설 못지않다.

 

 

약간 평범한 구성이라 쓸 말이 없을 것이라는 처음 예상과 달리 글이 길어지는 것은 그들이 품어낸 열기와 경기에서 보여준 긴장감과 자세히 알지 못하던 육상의 세계를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각각의 책 부제가 제자리로!, 준비!, 땅! 이라고 한 것처럼 이제 육상을 시작한 신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1학년은 육상선수로서의 자리를 찾고, 2학년은 육상선수로서의 몸과 마음을 만들고, 3학년이 되어서는 당당히 다른 선수들과 경합한다. 출발 신호인 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그가 앞으로 갈 길의 시작만 보여준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선수들과 함께 다투며 성장할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지막을 덮지만 나의 가슴속엔 바람처럼 달리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두 발이 움찔거린다. 나도 바람처럼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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